[충남서부 잇단 사고] ③ "민관 감시체계 확대해야"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도입·지자체 역할 강화 목소리도
(대전=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충남 서부 대형 사업장에서 발생한 각종 사고의 원인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 17∼18일 발생한 한화토탈 유증기 유출 사고도 노조 파업으로 비숙련 근로자들을 공장에 투입했다가 일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고가 심각한 인명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공장 주변 주민 수백명이 매스꺼움과 구토 증세를 보여 병원 진료를 받았다.
현대제철·한화토탈·현대오일뱅크 등 대기업 사업장일수록 안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지만, 경비 감축 등을 위해 제대로 된 안전시설을 설치하지 않거나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각종 산업재해 사고의 원인에도 '열악한 노동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언젠가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과 함께 단순 사고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조언한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주장한 '하인리히 법칙'이다.
사소한 것을 방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으로 전문가들은 사고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예방'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사망사고를 비롯해 이 지역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 부품을 교체하던 50대 근로자가 변을 당했고, 지난달에도 한솔제지 장항공장에서 20대 근로자가 운송장치에 끼여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국회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해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김 씨 유족을 만나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제2의 김용균'이 없어야 한다고 온 사회가 들끓은 게 엊그제인데 노동현장의 안일한 안전의식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이형복 대전세종연구원 도시안전연구센터장은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 센터장은 "산업재해의 가장 큰 원인은 사람 실수고, 대부분 사각지대에서 발생해 미처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노동현장에 산업안전디자인을 적용해 근로자 이동 동선을 눈에 띄게 하거나 거울 등을 설치해 가시 영역을 넓히는 등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성 충남재난안전연구센터장도 "기업이 근로자 안전을 위해 사용해야 할 비용을 약자에게 떠넘기는 구조가 문제"라며 "근로자 안전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데 인색하다 보니 최일선에 있는 근로자들이 위험을 가장 많이 떠안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각종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조 센터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처벌 수위가 약해 보인다"며 "사고가 날 경우 소요되는 비용이 안전을 위한 비용보다 크다고 인식될 정도로 처벌 수위가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안전 컨트롤타워 역할 강화도 시급한 문제다.
강원 산불 화재에서 보듯 청와대가 재난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모든 부처가 속도감 있게 대응하면서 중앙정부의 안전 컨트롤타워는 제 역할을 하고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경우 열악한 재정 여건 등으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조 센터장은 "안전 관리 분야에 있어서 지방자치단체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그만한 준비가 됐는지는 걱정"이라며 "광역자치단체 경우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기초자치단체는 의식조차 흐릿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민관 거버넌스를 통한 감시체계 확립 및 지자체의 홍보·교육 강화도 필요하다.
조 센터장은 "대형 사업장일수록 접근조차 통제되는 경우가 많다"며 "민과 관이 함께 사업장의 불법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복 센터장은 "사업주가 지속해서 안전관리를 위해 신경을 쓰는지 지자체가 점검해야 한다"며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 교육을 비롯해 각종 유해물질 배출 여부를 감시하는 것도 지자체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를 비롯한 진보진영에서는 이른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통한 책임자 처벌을 꼽는다.
현행 형법에는 기업이 안전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해도 기업을 직접 처벌할 수 있는 양벌규정이 없다.
캐나다, 호주, 영국 등 해외에서 '기업살인법'이라 불리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은 2016년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발의안을 포함해 수 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오임술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노동안전국장은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숨지는 경우 평균 벌금이 430만원 정도에 불과하고, 안전관리자가 입건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처벌받고 기업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안전관리를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국장은 이어 "노동자의 현장 참여도 꼭 필요하다"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의 권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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