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종 前법원장 재판서도 "공소장에 필요한 것만 써라" 지적
檢 "공소사실 특정 위한 기재"…辯 "안 좋은 예단 형성하게 해"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관련자들을 줄줄이 재판에 넘긴 검찰이 사건마다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를 어긴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사가 기소할 때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내야 하며, 이 밖에 법원에서 예단을 갖게 할 서류나 기타 물건을 첨부·인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정문성 부장판사)는 22일 공무상 비밀누설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이 전 법원장은 법원장으로 재직하던 2016년 10∼11월 서부지법 집행관 사무소 직원들의 수사와 관련해 영장 사본을 입수한 뒤 법원행정처에 보고하는 등 수사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법원 사무국장 등에게 영장 사본 등을 신속히 입수·확인해 보고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한 혐의도 받았다.
이 전 법원장의 변호인은 검찰의 공소장과 관련해 "피고인이 전혀 알 수 없는 사실, 기소된 이후에 벌어진 사실까지 모두 공소장에 기재돼 있다"며 "피고인에 대한 안 좋은 예단을 형성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범죄사실의 핵심만 기재하고 배경 사실은 대폭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변호인은 공소장의 각주에 피고인과 관련 없는 부정적인 사실관계도 거론돼 있다며 이 또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공소사실을 특정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범행 동기나 배경, 기타 정황 등을 적은 것"이라며 일본주의에 위배되는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통상의 공소장보다 기재가 많은 건 맞다"며 "변호인 지적처럼 피고인이 관여하지 않은 부분이나 이미 범행이 성립된 이후의 정황, 각주 등도 일본주의 위배가 아닌가 상당히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일본주의 위배로 의심되는 부분은 검찰이 정리해주면 좋을 것 같다"며 "공소장에는 필요한 것만 쓰고, 그 외에 부분은 의견서로 내는 방법도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검찰에 다음 공판준비기일까지 공소장을 정리해달라고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이후 구체적인 심리 계획을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지난 20일 열린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 등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도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지적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 역시 "통상의 공소장과 달리 공소장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며 공소장 정리를 당부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건에서는 재판부의 구체적인 공소장 변경 요구에 따라 검찰이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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