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굶는데…' CNN, 구호물품 빼돌리는 예멘반군 고발
"구호대상 60% 실제 지원 못 받아…서류 조작해 빼돌린 물품 시장에서 거래"
WFP 사무총장 "배고픈 사람 입에서 음식 훔치는 것" 비판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예멘의 후티 반군이 엄청난 규모의 유엔 구호물자를 빼돌리고 있다고 CNN이 20일(현지시간) 전했다.
CNN은 예멘과 국제 NGO 관계자, 지역 관리, 후티 반군이 장악한 4개 주 주민, 유엔의 관련 문서 등을 토대로 후티 반군의 구호물자 가로채기 실태를 고발했다.
지난 3월 예멘 수도 사나에서 CNN 취재진을 만난 여성 10여명은 구호물자를 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미라 살레는 자신의 이름이 구호 물품 수령자 목록에 올라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녀와 10명의 가족이 구호물자를 받은 것은 6개월 전이 마지막이었다.
살레는 또 자신이 다른 자선단체로부터 11만 예멘 리알(약 53만원)을 받았다는 기록을 확인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가끔 식량을 받기 위해 학교로 오라는 문자메시지를 받는다"며 "막상 가보면 지원자 목록에 내 이름은 있지만, 지원물자는 없고 어떤 안내도 없다"고 말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수도 내 7개 구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구호 물품 지급 대상자 중 60%가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며 "속임수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WFP는 (구호품 배분) 기록이 조작됐을 뿐 아니라 인가받지 않은 사람에게 식량이 돌아갔으며, 도시 인근 시장에서 지원물품이 버젓이 거래된다고 덧붙였다.
데이비드 비슬리 WFP 사무총장은 "이 같은 행위는 배고픈 사람의 입에서 음식을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먹을 것이 부족해 예멘 아이들이 죽어가는 마당에 그것은 잔인무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CNN은 구호단체 내부문서를 조사한 결과 33개 지역의 구호물자 배분 기록이 실제와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33개 지역 중 20곳이 후티 반군의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WFP와 다른 구호단체들은 '인도주의적 책무'를 우선시했으며, 부패와 구호물자 전용 등의 문제가 있더라도 도움이 절박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2018년 미국이 최대 후원국이 되면서 WFP는 강경노선으로 돌아섰다.
비슬리 사무총장은 후티 지도부에 협력을 중단하고 원조를 끊겠다고 통보했다.
비슬리 총장은 서한에서 "WFP는 부정부패에 대해 무관용 정책을 펴고 있다"며 "개인은 물론 후티 정부를 포함한 어떤 단체의 방해도 용인할 수 없다"고 적었다.
WFP와 후티 반군이 구호물자의 전용을 막기 위해 새로운 생체인식·등록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합의하면서 문제는 일시 봉합됐지만, 새 시스템은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상당량의 구호물자가 빼돌려진 탓에 예멘의 아이들은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다. CNN은 심각한 영양실조와 합병증으로 아이들의 몸이 앙상해졌다고 전했다.
간호사 메키아 알-아슬라미는 "감당할 수 없는 전쟁이 4년째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는 이미 최상위 빈곤 국가에 속한다. 전쟁 때문에 누구도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국경은 봉쇄됐고 24시간 공습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예멘은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세력을 키운 후티 반군이 2015년 수도 사나를 점령하면서 내전에 돌입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예멘 내전에 개입하면서 극도의 정정 불안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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