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논란서 부모쪽 선 佛법원…11년 식물인간 연명치료 명령
의료진 영양·수분 공급 중단…법원,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검토 요구
부모, 연명치료 이어가려 고군분투…다른 가족 "가학 행위" 비판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프랑스 법원이 오랜 기간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가 연명치료가 중단돼 안락사 위기에 처하자 곧바로 치료를 재개하도록 하는 명령을 내렸다.
파리항소법원은 20일(현지시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RPD)의 검토가 이뤄지는 동안 뱅상 랑베르(42)의 연명치료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을 의료당국에 명령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CRPD가 조사를 마치기까지는 최대 몇 년이 걸릴 수 있어, 11년째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는 랑베르는 더 생명을 유지하게 됐다. 랑베르는 2008년 자동차 사고로 인한 심각한 뇌 손상과 사지 마비 등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법원 명령이 내려지기 불과 수 시간 전 랑베르의 담당 의료진은 소위 소극적 안락사법에 따른 그의 아내와 형제자매 등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에게 영양과 수분공급을 끊었다.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되는 랑베르에게 가장 '인간적인' 조치는 안락사라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랑베르도 사고 전에 연명치료에 반대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분명하게 밝히기도 했다.
지난달 프랑스 최고 행정재판소인 국사원에 이어 20일 유럽인권재판소(ECHR)도 랑베르의 경우 연명치료 중단이 인권 위반이 아니라면서 안락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랑베르의 부모는 법원에 연명치료 중단을 막아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도 서한을 보내 아들을 살려줄 것을 호소했다.
일단 마크롱 대통령은 "치료 중단 결정은 (랑베르의) 법적 대변인인 아내와 의료진 간의 대화를 통해 내려진 것"이라며 랑베르 부모의 요청을 거절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20일 직접 이 사건을 언급하는 등 종교계가 들고 나섰다.
이날 오후에는 파리 도심에서 시위대가 프랑스 보건부 청사부터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을 향해 행진하며 마크롱 대통령에게 연명치료를 이어 나가도록 개입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랑베르의 어머니인 비비앙(73)은 법원 명령이 아들의 연명치료를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한 끝에 얻어낸 "아주 큰 승리"라 환호하며 "이번만은 법원이 참 자랑스럽다"고 했다.
반면 랑베르의 아내 레이철은 "남편이 떠나도록 두는 것이 그를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안락사에 찬성했던 랑베르의 조카 프랑시스도 치료 재개가 "의료·사법체계가 자행하는 순전한 가학 행위"라고 비판했다.
랑베르의 아내와 형제, 조카 등은 2014년에도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물과 음식 공급을 끊게 해 달라는 요청을 법원에 냈으나 기각당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2005년부터 말기 환자에 한정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치료를 중단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으나, 이른바 '적극적' 안락사는 여전히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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