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라배마州법이 불붙인 낙태 찬반논쟁, 美대선 이슈 조기부상
'낙태반대론자' 트럼프, 앨라배마법과는 거리두며 보수층 균열 차단 시도
대선주자 논쟁 본격 점화…민주 여성주자 "트럼프가 질 수밖에 없는 싸움"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2020년 미국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낙태 문제가 조기에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성폭행 피해로 인한 낙태까지 금지하는 초강력 법이 지난주 앨라배마주에서 입법화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며칠간의 침묵을 깨고 공개적 언급을 내놓음에 따라 여야 대선주자 간 논쟁도 본격 점화하는 모양새이다.
통상 낙태에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잣대로 여겨져 왔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 진영 간 첨예한 전선이 형성될 전망이다.
특히 임신 24주 이후의 '후기 낙태'를 허용한 뉴욕주 법을 놓고 거센 공격을 가해온 공화당 진영 내부에서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앨라배마주 법이 자칫 반대 진영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더욱이 공화당 내부에서도 이 법의 낙태 금지 수위를 놓고 이견이 분출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낙태 반대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도 앨라배마주 법과는 선 긋기에 나서며 '줄타기'를 시도한 것도 보수 진영 내 균열을 조기에 봉합하면서 지지층 이탈을 막으려는 차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기에 여성 유권자의 '파워'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여심'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을 앞두고 전국적 차원의 낙태 찬반논쟁이 가열되면서 격한 법정 공방도 예고되고 있다. 앨라배마주에 이어 미주리주 주의회 하원에서 지난 17일 임신 8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등 미국 내에서 낙태금지를 입법화하는 주(州)가 늘어나는 가운데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1973년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인정한 연방대법원의 '로 대(對)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이 연방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힐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밤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나는 강력하게 낙태를 반대한다"면서도 "성폭행과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경우 등 3가지는 예외"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앨라배마 낙태 금지법'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는 이 법과는 선을 그으면서도 동시에 낙태반대론자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앨라배마 낙태금지법'은 임신 중인 여성의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됐을 때를 빼고는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성폭행 피해로 임신하게 된 경우나 근친상간으로 아이를 갖게 된 경우까지 더해 '3대 예외 조건'을 제시, 유연성을 다소 발휘하며 외연 확대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을 통해 "우리는 함께 뭉쳐서 2020년 생명을 위해 이겨야 한다"면서 "우리가 어리석게 행동하거나 하나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생명을 위해 힘겹게 싸워 얻어낸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며 공화당 내부의 균열을 경계하는 동시에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두고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하는 앨라배마주 법은 '도를 넘었다'(go too far)는 입장을 시사했다"고 풀이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3가지 예외 조건에 대해서는 낙태에 대한 권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며 "이는 그의 중요한 지지기반인 많은 낙태 반대 보수층에서도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앨라배마 낙태법에 대한) 직접적 거론은 자제한 채 조심스럽게 앨라배마 낙태법으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뒀다"면서도 "앨라배마주의 낙태법이 도를 넘었다는 걸 내비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강력하게 낙태를 반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99년 한 인터뷰에서 '낙태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낙태 반대 운동가들로부터 비판적 시선을 받은 바 있으나 취임 이후 낙태 반대 관련 정책들을 펴왔다고 WP는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을 잇달아 지명, 연방대법원 지형을 5대 4 보수 우위로 돌려놓으면서 보수 진영에서는 판례 변경에 대해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 분위기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내 '정적'인 밋 롬니(유타) 상원의원도 이날 CNN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앨라배마 법을 지지하지 않는다. 성폭행, 근친상간, 산모 생명이 위험한 경우의 낙태금지 예외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 이슈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사실상 가세한 셈이다.
2012년 공화당 대선주자였던 롬니 상원의원은 앨라배마 법이 '너무 나간 것'이라며 "사람들은 양 날개로 향하곤 하는데, 때로는 중간을 지향하는 어떤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일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예비 대선후보들은 여성 주자들을 중심으로 공격에 나섰다.
키어스틴 질리브랜드(뉴욕) 상원의원은 이날 미 CBS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이 갖고 있는 '임신·출산의 자유'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시작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여성 투표자의 급증 추세는 내년 대선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에이미 클로버샤(미네소타) 상원의원은 이날 폭스뉴스 방송의 '폭스뉴스 선데이' 인터뷰에서 앨라배마주 법에 대해 "위험하며 주류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라며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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