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10년' 악용 우려 현실로…마약·협박범죄에 단골 등장

입력 2019-05-20 06:10
'비트코인 10년' 악용 우려 현실로…마약·협박범죄에 단골 등장

비트코인 마약구매 잇따라 적발…한국교민 납치범도 암호화폐 요구

전문가 "범죄악용 막기 쉽지 않아…통제장치 필요"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정부의 개입 없이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암호(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지났다. 익명성을 강조하는 암호화폐의 특성상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초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2009년 개발돼 최근까지 급등락을 반복한 비트코인은 익명으로 거래된다는 점 때문에 '검은 돈'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마약 구매에 비트코인이 활용되고, 납치·협박범들이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사례도 잇따른다.

이런 내용은 국내의 여러 판결과 수사를 통해서도 사실로 확인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대마) 혐의로 기소된 이모(37)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인터넷에서 68회에 걸쳐 한화 2천637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으로 대마 약 227g을 산 뒤 흡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수십차례에 걸쳐 많은 양의 대마를 구매하고 투약한 점 등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2천637만원가량의 추징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재판 당시 비트코인의 가격이 아니라 매수 당시의 가치를 기준으로 추징금을 산정했다.

앞서 울산지법에서도 22만7천원 상당의 비트코인으로 향정신성의약품을 주문한 혐의로 기소된 A(31)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바 있다. 부산지법은 비트코인으로 마약류를 해외에서 구매한 B(24)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최근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기소 된 SK와 현대그룹 3세들에게 마약을 공급한 공급책 역시 비트코인으로 마약을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에는 필리핀에서 우리나라 교민을 납치해 가족에게 1만7천달러(약 2천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뜯어낸 교민 C씨가 현지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또 지난 15일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공항공사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비트코인을 입금하지 않으면 공항에 독가스를 살포하겠다'는 영문 게시글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비트코인을 악용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비트코인의 악용 가능성에 대한 경고와 함께 통제장치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온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에 참석한 누비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범죄자나 탈세자만 익명을 선호한다"며 "암호화폐가 다음 세대의 '스위스 은행'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나라에서도 범죄 활동을 소탕해야 하기에 익명성을 가진 암호화폐를 허용할 수 없다"며 "사회질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자들이 추적이 쉽게 안 되는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면서 "국가가 개인의 비트코인 거래를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국내가 아닌 해외거래소를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면 더욱더 추적하기 쉽지 않다"면서 "범죄 혐의점이 있을 때 수사기관이 거래 내역을 볼 수 있도록 글로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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