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후예 아니라면…" 文대통령 '5·18 망언'에 작심비판
"망언 부끄럽다" 한국당 의원들 겨냥 해석…"더 이상 논란 불필요" 쐐기
진상규명委 출범 당부하며 정치권 환골탈태 촉구…"책임감 가져야"
"유신·5공시대 정치의식" 지적…국회서 개헌 무산된 일도 언급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른바 '5·18 망언' 등을 겨냥한 작심 비판을 내놨다.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에 이어 2년 만에 5·18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40주년인 내년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저는 올해 꼭 참석하고 싶었다. 광주 시민들께 너무나 미안하고,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참석이 주변의 권유 때문이 아닌, 전적으로 문 대통령 본인의 의지임을 강조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다"고 거듭 밝혔다.
문 대통령이 구체적 사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 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망언 논란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 2월 18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해당 의원들의 발언에 대해 "우리 민주화 역사와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결국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성토한 바 있다.
이런 '막말'은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발언인 만큼, 헌법 수호의 의무를 지닌 대통령으로서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아울러 일부 정치인들이나 극우단체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거나 소모적 논쟁이 계속된다면 이는 국민분열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에는 '5·18 망언'에 대한 강력한 비판 외에도 정치권의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언급이 다수 포함됐다.
문 대통령은 "아직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히는 것, 비극의 오월을 희망의 오월로 바꾸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당연히 정치권도 동참해야 할 일"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고 있다"며 "5·18 이전, 유신 시대와 5공 시대에 머무르는 지체된 정치의식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결국 5·18 진상규명 등에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힘을 모아야 하며, 이에 역행하는 것은 '유신 시대·5공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시대착오적 행동이라는 것이 문 대통령의 인식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구체적으로는 진상조사규명위원회 설치를 국회 및 정치권의 과제로 제시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한국당이 추천한 조사위원 3명 가운데 2명에 대해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명하지 않기로 한 바 있으며, 이후 위원회 출범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국회와 정치권이 더 큰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달라"라고 촉구했다.
5·18의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은 물론 사회통합의 디딤돌인 만큼 이를 위한 정치권 전체의 노력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해 3월 발의한 정부 개헌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것에 대해 언급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개인적으로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담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못하는 것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헌법 전문에 4·19 혁명, 부마항쟁, 5·18 민주화 운동, 6·10 민주항쟁의 이념을 계승한다는 점을 명시해 개헌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표결에서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이 선언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국회에서 여야 대립으로 개헌이 무산된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냄과 동시에 여전히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담을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hysu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