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 3주기 추모제…"오늘도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묻지 마 살해 아닌 여성 혐오 범죄"…버닝썬 수사 결과 비판하기도
200여명 참석…강남역 10번 출구서 헌화 뒤 추모 포스트잇 부착
(서울=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오늘도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았습니다. 내일도 살아남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많은 여성이 이런 세상에서 생존해 있습니다. 확신 없는 목숨을 가지고 여기에 모였습니다."
서울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강남역 살인사건 3주기를 맞은 17일. 사건 발생 장소 근처인 강남역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
불꽃페미액션은 이날 오후 7시부터 강남역 인근 강남 스퀘어에서 '묻지 마 살해는 없다' 추모제를 개최했다.
참가자 200여명 대부분이 여성이었지만 남성들도 일부 있었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뜻에서 검은색 옷차림으로 나온 참석자들도 곳곳 눈에 띄었다.
추모제 사회자는 "언론에서 강남역 살해 사건을 두고 묻지 마 살인, 무차별 살인이라고 하고 사건을 축소하려고 했지만 이것은 여성 혐오 범죄"라며 "묻지 마 살해는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청소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한 참가자는 "3년 전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여성으로서 느낀 일상적인 공포가 더는 개인적인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여성 혐오를 인정하지 않으면 혐오 피해자를 더 양산할 것"이라며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너의 죽음은 잊히지 않는다. 다시 강남역에서 우리는 외친다. 묻지 마 살인은 없다"는 추모 시를 낭독하며 울음이 북받친 듯 목메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강남역 살인사건 후 3년이 지났지만 사회적 분위기나 제도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마약을 이용한 성폭행, 성매매, 불법 촬영과 유포 등 여성 대상 범죄를 총망라한 듯한 클럽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의혹의 핵심 인물인 빅뱅 전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9)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등 처리 결과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참가자들도 적지 않았다.
한 참가자는 "검경은 여성 대상 범죄에 여전히 소극적 반응을 보인다"며 "버닝썬 수사 결과를 보면 국가가 생존권을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참가자도 "버닝썬 수사 결과가 참담해 3년간 무엇이 바뀌었나 생각했다"라고 토로했다.
발언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맞은 편으로 길을 건너 침묵한 채로 '불금'의 강남대로를 행진했다.
손에는 저마다 '묻지 마 살인(X) 여성 혐오 살인(O)', '묻지 마 살해는 없다',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는 피켓과 흰 장미, 국화를 들었다.
이후 참가자들은 다시 강남역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사건 발생 장소 근처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멈춘 뒤 헌화하고 사건 직후 때처럼 추모 포스트잇을 붙였다.
참가자들은 포스트잇에서 피해자의 명복을 빌고 여성에게 안전한 세상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porqu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