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스크린에 소환된 돈키호테, 꿈·열정을 일깨우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광고 촬영을 위해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 오게 된 천재 CF 감독 토비(아담 드라이버 분). 매너리즘에 빠져 촬영에 심드렁하던 그는 우연히 자신이 만든 졸업작품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DVD를 보게 된다. 직접 장소를 헌팅하고, 현지 주민을 섭외해 찍을 정도로 온 열정을 바친 작품이다. 옛 추억에 잠긴 토비는 당시 촬영 장소인 인근 마을을 찾아간다. 토비는 그곳에서 과거 돈키호테 역을 맡은 구둣방 할아버지 하비에르(조나단 프라이스)를 만난다. 그는 영화를 찍은 뒤 자신을 진짜 돈키호테로 믿고 살아가고 있었다. 하비에르는 토비가 나타나자 심복 산초라 부르며 반갑게 맞이하고, 두 사람은 기묘한 여행을 시작한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미국 거장 감독 테리 길리엄이 스페인 문호 미겔 데 세르반테스 명작 '돈키호테'를 모티프로 만든 작품이다.
'브라질'(1985)부터 '그림형제: 미르바덴 숲의 전설'(2005) 등 판타지적 성향이 강한 영화를 만든 길리엄답게 17세기 고전에다, 21세기 현실을 덧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영화로 탄생시켰다.
영화는 예측불허 스토리와 다채로운 풍광으로 가득 차 마치 만화경을 보는 것 같다. 이야기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현실과 환상이 뒤얽혀 주인공 의식의 흐름처럼 펼쳐진다. 영화 속 영화라는 액자구조를 도입해 이야기 층위도 다양하다.
정작 현대에 소환된 돈키호테는 17세기 원작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을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라 여긴 괴짜 노인 하비에르는 "잊힌 기사도를 다시 세워야 한다"며 낡은 갑옷을 입고, 말 로시난테를 타고 모험을 떠난다. 그가 사랑하는 둘네시아 공주를 지키고, 괴물들을 물리쳐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다. 그 곁에는 21세기 산초인 토비가 함께 한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검을 빼서 달려드는 하비에르는 현실에서는 '미친 노인네'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할 줄 모르고,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결국 토비마저 변화시킨다.
하이라이트는 궁에서 열리는 파티 장면이다. 토비의 광고주는 하비에르의 몽상을 이용해 한 편의 연극을 꾸미고, 하비에르는 부자들의 눈요깃거리로 전락한다. 각 인물들은 서로 광기를 내뿜으며 부딪히고 파티는 한바탕 난장으로 바뀐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누가 제정신인지 아닌지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기본 정서는 코미디와 해학, 풍자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하비에르의 꿈과 열정이 짓밟히고 농락당할 때는 슬픔이 밀려든다.
길리엄이 '돈키호테'를 스크린에 옮기겠다고 마음먹은 때는 1989년. 제작비와 캐스팅 문제, 각종 사고 등으로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30년 가까이 그 꿈을 놓지 않았고 결국 이뤄냈다. 그런 감독의 모습은 돈키호테와 오버랩된다. 길리엄은 "돈키호테의 본질을 담아내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꿈과 열정, 순수함을 잃어버린 오늘날, 우리에게는 돈키호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배우들의 연기가 빼어나다.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2017), '패터슨'(2017) 등으로 알려진 아담 드라이버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더 와이프'에 출연한 조나단 프라이스의 연륜이 극을 풍성하게 한다.
지난해 제71회 칸영화제 폐막작에 선정되는 등 각종 영화제에 초청돼 호평받았다.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카나리아 제도, 카스티야라만차 등 스페인 명소에서 촬영돼 스페인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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