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후 학부모 전화 괴로워요" 교사에 업무용 전화 지급 추진

입력 2019-05-12 06:11
"퇴근후 학부모 전화 괴로워요" 교사에 업무용 전화 지급 추진

경남·서울교육청, 하반기 시범시행…맞벌이 부모 소통·예산조달엔 우려

"전화 지급은 임시처방…교사존중 문화 조성돼야"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교사의 휴식을 방해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퇴근 후 학부모 전화'에 대해 교육 당국이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12일 교육계에 따르면 경남도교육청은 하반기부터 교사에게 업무용 휴대전화 번호를 주는 '교원 투 넘버 서비스' 시범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대상은 교권침해가 발생했던 학교 등 300개교의 담임교사와 생활지도교사 등이다.

교사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가 학부모에게 알려져 퇴근 후에도 전화에 시달리고 사생활이 드러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도 담임교사에게 업무용 휴대전화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르면 하반기 시범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원노조와 업무용 휴대전화 지급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정말 긴급한 일이 아니면 퇴근한 교사에게 전화를 자제하는 문화가 생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교육청들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교사들도 '퇴근 후 전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해 6월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원 1천835명을 조사한 결과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 준 적 있다는 교원이 96.4%였다.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 뒤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실제 전화나 메시지를 받은 적 있다는 교원은 95.8%였다.

특히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전화·메시지를 받은 적 있다는 교원 중 64.2%는 "근무시간 여부와 상관 없이 수시로 전화·메시지를 받았다"고 답했다.

21.4%는 '평일 퇴근 후', 3.2%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주로 전화나 메시지를 받았다고 답했다. 근무시간에 받는 경우가 많다는 교원은 11.2%였다.



업무용 휴대전화를 지급해 일과 중에만 전화를 받게 하면 교사들은 환영하겠지만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맞벌이 학부모는 교사와 소통할 방법이 사실상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고교의 경우 교사가 언제 수업 중이고 언제 통화할 짬이 나는지 학부모가 알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서울교육청은 이런 점을 고려해 '학부모에게 퇴근 후 전화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면서 긴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 연락할 수 있는 당직실 번호 등도 함께 안내하고 일과 중 카카오톡 등을 활용해 학부모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라'는 가이드라인도 함께 내려보낼 계획이다.

예산 문제도 만만치 않다. 서울 초중고와 특수학교 학급 수를 고려할 때 지난해 기준 학급담임을 맡은 교사는 3만8천여명이다. 이들에게 휴대전화 기곗값을 제외하고 통신요금만 지원해도 연간 100억원대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서울교육청은 추산한다.

경남교육청이 추진하는 투 넘버 서비스는 요금이 1인당 3천원 안팎이어서 상대적으로 예산은 적게 들지만, 퇴근 후 전화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한다는 게 단점이다. 이 때문에 경남교육청도 개인 휴대전화 번호 공개로 SNS 프로필이 노출되는 등 사생활 침해를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모든 담임교사에게 교육청 예산으로 휴대전화를 지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각 학교 기본운영비로 필요한 교사에게 업무용 휴대전화를 마련해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계에서는 업무용 휴대전화 지급은 임시처방에 불과하다며 근본적인 해결은 '교사 존중 문화' 조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 '교권보호 및 교원치유지원센터'에 교권침해를 당했다며 상담을 요청한 교사는 지난해 770명에 달했다.

또 지난해 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사례는 501건으로 10년 전인 2008년(249건)에 견줘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학부모가 교사에게 폭언하거나 교육청 등 상급기관에 악성민원을 반복 제기했다는 등의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가 243건으로 전체의 48.5%를 차지해 학부모가 교사를 존중하는 문화조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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