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독립운동 발원지' 광주일고에 친일 인사 기념비 버젓이

입력 2019-05-10 10:57
'학생 독립운동 발원지' 광주일고에 친일 인사 기념비 버젓이

민족문제연구소 "전형적 일제 충혼탑 형태…60년 이상 서 있어"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광주 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한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 교정에 친일 인사 기념비가 서 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10일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에 따르면 광주일고 교문 안쪽에는 지정선(1905∼?) 등 2명의 이름이 새겨진 장학 기적비(記積碑)가 세워졌다.

기단 부분에는 학교 상징 표시와 함께 '中(중)'이라고 새겨진 점으로 미뤄 광주일고와 함께 있었던 광주서중에 장학금을 기탁한 데 감사하는 표시로 기념비를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지정선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 인명사전에 오른 인사 중 '지역 유력자'(69명)로 분류돼 포함됐다.

전남도 도회의원, 광주부 부회의원을 지냈으며 전남인쇄소 주식회사, 광주 붕남농장 취제역(이사)을 지냈다.

조선총독부가 전시 체제 강화와 유도황민화(儒道皇民化)를 위해 조선 유림을 동원, 조직한 조선유도연합회에서 참사(參事)를 맡았다고 기록됐다.

1940년 5월 광주상공회의소 의원과 옥천(玉泉) 합자회사 사장 등을 역임한 그의 형과 함께 국방헌금 4만원, 광주부 군사후원연맹비 5천원, 광주신사 조영비 5천원, 휼병(恤兵) 가족 위문금 5천원 등 총 5만5천원을 헌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닥이 정사각형이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은 전형적인 일제 충혼탑 형태라고 민족문제연구소는 평가했다.

1920년 광주 고등보통학교로 개교해 1938년 광주 서공립중학교, 1951년 광주서중으로 개명했다가 1953년 광주제일고로 설립 인가된 학교 역사를 고려하면 기적비는 1953년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광주일고는 99년 전통뿐 아니라 1929년 광주 학생독립운동의 발원지로서 상징성을 가진 학교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학생 항일 독립투쟁의 역사를 자랑하는 광주일고 교문 바로 안쪽, 눈에 잘 띄는 곳에 반세기 이상 친일 인사의 기적비가 서 있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광주일고 교정에 있는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도 일제 충혼탑 모양이라는 의구심이 들어 친일잔재 태스크포스 등을 통해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일고는 친일 인사로 분류된 작곡가 이흥렬이 만든 교가도 교체하기로 했다.

학교 측은 광주 학생독립운동 90주년 기념일(11월 3일)에 부르는 것을 목표로 동문이자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인 김종률 씨에게 새 노래를 맡겼다.

sangwon7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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