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얽매이지말라" 속도조절에 무게
'사회·경제 수용성'도 강조…주 52시간제엔 "충분한 계도기간 줄 것"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린다'는 정부 공약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에 무게를 실어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아 이날 밤 청와대 상춘재에서 한 KBS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폭에 관한 질문에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돼 있는 것이어서 대통령이 무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때 공약이 2020년까지 1만원이었다고 해서 그 공약에 얽매여 무조건 그 속도대로 인상돼야 한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풀영상]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 / 연합뉴스 (Yonhapnews)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8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일정을 논의했다. 본격적인 심의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독립 기구인 최저임금위 심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수위의 발언은 자제하면서도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공약이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번 대선 과정에 저를 비롯한 여러 후보들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이 최저임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그 점에 대해선 대통령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위가 올해 적용할 최저임금을 시간당 8천350원으로 인상한 작년 7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공약을 못 지키게 된 것을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현재 8천350원인 최저임금을 공약대로 내년에 1만원으로 올린다면 인상률이 19.8%가 돼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공약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 것은 최저임금위가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할 여지를 넓혀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저임금위가 내년도 최저임금도 큰 폭으로 올릴 것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많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두 자릿수 인상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도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필요성을 여러 차례 제기했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경제의 수용성을 강조한 것 또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2년에 걸쳐서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인상됐고 그것이 또 긍정적인 작용이 많은 반면에 한편으로 부담을 주는 부분들도 적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최저임금위원회가 그런 점을 감안해서 우리 사회, 우리 경제가 수용할 수 있는 적정선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은 정부가 최저임금 심의에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을 포함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최저임금 심의에 경제 상황을 반영하기로 한 데는 경제에 부담을 줄 정도로 최저임금을 인상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방안은 국회의 최저임금법 개정 지연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는 사실상 적용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의 사회 수용성에 관한 질문에 "법 제도로서 최저임금 결정 제도의 이원화, 두 단계에 걸쳐 결정하도록 개정안을 낸 것인데 그것이 국회에서 처리가 되지 않아서 아쉽지만, 현행 제도로 가더라도 최저임금위원회가 그런 취지를 존중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정부의 양대 노동정책으로 꼽히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주 52시간 노동제도 지금은 300인 이상 기업에서 시행되는데 작년 말까지 95% 정도가 다 시행에 들어가서 거의 안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내년 1월부터 50∼299인 사업장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됨에 따른 혼란 우려에는 "그 부분이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인데 미리 대비책을 세워야 하고 충분한 계도기간을 줘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례 제외 업종에 속하는 버스업이 오는 7월 주 52시간제 시행을 앞두고 파업 초읽기에 들어간 데 대해서는 "경기도 시외버스의 경우 52시간이 되지 않고 있는데 52시간을 하려면 새로 버스 기사 채용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요금 인상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진통을 겪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ljglor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