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항모에 이란은 核재개 시사…美 합의탈퇴 1년만에 긴장 급고조(종합)
美, 항모전단에 B-52 등 폭격기 중동 급파하고 폼페이오는 이라크방문
이란도 핵합의 일부중단…"60일 내 미해결시 더높은 농도로 우라늄 농축"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공식 탈퇴한 지 꼭 1년이 되는 8일 양국 사이의 긴장이 더 고조되고 있다.
먼저 미국이 대(對) 이란 제재를 차례로 복원하고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의 예외 조치를 중단한 데 이어 항공모함과 폭격기를 급파하기로 하며 경제·군사적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린 것이 도화선이 됐다.
이에 맞서 이란도 핵합의 의무 이행의 일부 중단을 선언하고 두 달 안에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금지된 핵 활동을 재개할 수 있음을 경고, 핵위기 재발 우려를 낳고 있다.
◇ 항모에 B-52 폭격기까지…폼페이오도 전격 중동行
대 이란 경제 봉쇄망을 조이는 데 주력하던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들어 군사·외교 행보에도 부쩍 속도를 내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는 분위기이다.
지난달 8일(현지시간)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IRGC)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트럼프 행정부는 주말인 지난 5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명의의 성명을 통해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들을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에 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볼턴 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항모전단과 폭격기 중동 배치의 배경으로 '미국의 이익'에 대한 이란의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빌 어번 미 중부사령부 대변인은 7일 성명에서 "이란과 이란의 대리군이 이 지역에서 미군을 공격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는 최근의 뚜렷한 징후 때문에 더 많은 병력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은 익명을 요청한 미 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중동에 배치하는 폭격기 중에는 B-52 4대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중동 지역에 배치됐던 B-1 폭격기와 비교해 B-52는 장거리 작전이 가능하고 핵 탑재 능력도 갖추고 있다.
항모와 폭격기를 급파하기로 한 것은 이란이 페르시아만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에 실어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CNN방송은 복수의 미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란이 미국 목표물에 대해 공격을 감행할 의도를 갖고 있다고 미국이 믿게 만든 여러 정보 중 하나가 미사일 이동에 대한 우려"라고 전했다.
CNN은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 등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포함한 추가 화력의 중동 배치도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 순방 중 독일 방문 일정을 돌연 취소한 폼페이오 장관도 이날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라크를 전격 방문해 대 이란 경고 메시지를 더했다. 독일 총리 및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당일 취소하고 동행 취재기자단에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을 정도의 긴박한 일정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풀 기자단에 이라크 방문이 "고조되는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 이란도 일부 합의이행 중단…우라늄 고농축·중수로 현대화 중단 '경고'
미국의 전방위 공세에 맞서 이란도 핵 활동 재개 가능성을 경고하며 2015년 7월 역사적인 핵협상 타결 이후 한동안 진정됐던 이란발(發) 핵위기 재발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합의 탈퇴 1주년인 8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란은 (핵합의에서 정한 범위를 넘는) 농축 우라늄의 초과분과 중수를 외부로 반출하지 않고 저장하겠다"며 핵합의 의무 이행을 일부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란은 핵합의에 규정된 한도(농축 우라늄 300㎏, 중수 130t)를 넘는 농축 우라늄과 중수를 러시아와 오만에 반출해야 한다. 따라서 초과분을 외국으로 보내지 않고 자국에 저장하겠다는 것은 핵합의 위반으로 볼 수 있다.
이란 외무부는 자국에 주재하는 핵합의 서명국 대사에게 이와 같은 핵합의 이행 축소와 관련된 법적, 기술적 내용을 담은 서한을 전달했다.
특히 로하니 대통령은 "유럽이 60일 안에 이란과 협상해 핵합의에서 약속한 금융과 원유 수출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라늄을 더 높은 농도로 농축하겠다"며 서방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현행 핵합의에 따르면 이란은 최대 3.67%의 저농도로만 우라늄을 시험용으로 농축할 수 있지만, 이란이 그동안 경고한 대로 우라늄을 20%까지 농축할 경우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90%의 고농도 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데 걸리는 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또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가 유럽과 협상이 결렬되면 아라크 중수로의 현대화를 중단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주목된다.
아라크 중수로는 핵합의에 따라 핵무기를 제조하기에는 부족한 양의 플루토늄만 생산할 수 있도록 연구·의학용으로 설계 변경됐다. 이러한 설계 변경을 중단한다는 것은 핵무기와 직결된 플루토늄도 본격적으로 생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란이 제시한 '최후의 60일' 동안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핵합의는 4년 만에 사실상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로하니 대통령은 "오늘이 핵합의의 종말은 아니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으나, 미국의 '최대 압박'으로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내놓은 이란의 '강수'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 왜 긴장 고조됐나…"워싱턴, 중동 외교정책 실패에 좌절"
미국 정부가 이란을 겨냥한 화력 증강의 구체적인 이유를 내놓지 않으면서 갑작스럽게 양국 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장관이 잠재적인 '타깃'으로 이란 정규군뿐 아니라 중동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란의 '대리군'을 일일이 언급한 것이 의미심장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란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팔레스타인의 이슬라믹지하드와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최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조직 하마스와 함께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쐈다는 보도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볼턴과 폼페이오는 아마도 이란이 최근 제재 강화 등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이용하거나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폭력을 선동하는 다른 작전을 계획할 것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또 중동 정책이 족족 실패하는 데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좌절감이 이란과의 긴장 수위를 높이는 원인일 수 있다고 가디언은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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