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에르도안' 재확인…이스탄불 재선거결정에 안팎 비판
親정부 미디어그룹도 "터키 대통령제 의문 커질 것" 우려
비상사태·개헌으로 권력장악 후 선거기구 독립성 훼손 지적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25년 만의 야당 후보 승리로 주목받은 이스탄불 시장선거는 결국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강력한 힘을 확인시키며 재선거 시행으로 결정이 났다.
집권 정의개발당(AKP)과 친(親)정부 평론가·매체는 이번 결정을 정당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오류가 바로잡힌 결과라고 환영했지만, 중도 성향의 언론만 하더라도 우려의 기색이 역력하다.
6일(현지시간) 터키 최고선거위원회(YSK)의 발표를 앞두고 최대 일간지 휘리예트의 필진 세르칸 데미르타시는 이스탄불 시장선거 무효 요청에 대한 YSK의 결정은 터키 민주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이라고 진단했다.
데미르타시는 이날 칼럼에서 "대통령중심제 개헌 후 터키에서 권력분립 원칙과 사법 독립성이 취약해졌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이미 거세다"라면서 "이스탄불 선거 무효 결정은 터키의 새 지배구조에 대해 더 큰 의구심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다수가 선거 무효 결정이 정치적 압력의 결과라고 믿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칼럼이 실린 휘리예트는 친(親)에르도안 미디어그룹 소속 매체다.
외부의 시선은 더욱 따갑다.
유럽의회의 카티 피리 터키 담당 조사관은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YSK가 에르도안 대통령 정부로부터 정치적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피리 조사관은 YSK의 결정이 "터키에서 선거를 통한 민주적 정권 이양에 대한 믿음을 끝장냈다"고 날을 세웠다.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재선거를 요구한 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YSK를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터키 선거관리기구가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휘말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6년 쿠데타 시도 진압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초법적 권한을 틀어쥐게 되면서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터키 정부는 2016년 7월 이후 '쿠데타 배후세력'이라는 이유로 법관 수천 명을 직위 해제하고 기소했다.
행정부를 넘어 입법·사법부까지 아우르는 강력한 권한은 개헌을 통해 법적으로 굳어졌다.
새 헌법에 따라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그의 이름 앞에는 오스만제국의 절대권력자 '술탄'이 별명으로 붙었다.
터키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은 10년 넘게 장기 집권이 가능하며, 법관 인사에서도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닌다.
법관으로 구성된 YSK는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롭기 힘든 구조다.
국가비상사태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2017년 치러진 대통령중심제 개헌 국민투표에서 YSK는 선거관리당국의 직인이 없는 투표용지 수백만장을 유효표로 인정했다. 이 결정으로 YSK는 신뢰성에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이번 이스탄불 선거에서 YSK는 공무원을 개표감시위원으로 선정해야 하는 선거관계 법령의 원칙이 위반됐다는 이유를 선거 무효 결정 이유로 들었다.
종전에 이 원칙을 이유로 선거 결과가 무효가 된 전례는 없다.
야당은 YSK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 놓임에 따라 선거의 정치적 중립성 자체가 흔들리게 됐다며 개탄했다.
제1 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 메흐메트 베카로을우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AKP가 YSK의 판사들에게 인신구속 가능성으로 위협을 가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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