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獨기고문 키워드는 '평범한 사람'…포용·평화도 강조
원고지 90장 분량 장문…'평범' 49번, '평화' 36번, '포용' 18번 언급
3·1운동·광주민주화운동·촛불혁명 공통점으로 '평범한 사람' 주목
'역사 만든 평범한 사람 소외돼' 인식도…꾸준한 개혁의지 내비쳐
'새로운 질서'로 평화·포용 제시…특권·반칙 아닌 공정·정의 강조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평범한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동양의 옛말은 '평범한 힘이 난세를 극복한다'는 말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7일 공개된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기고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평범한 사람'이다.
정부 출범 2주년을 눈앞에 둔 문 대통령은 1만6천218자, 200자 원고지 90장 분량에 달하는 장문의 기고문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와 문재인 정부의 비전을 상세히 소개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기고문에서 '한국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국가'라는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앞으로도 이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평범함의 위대함'이라고 제목을 정한 것을 시작으로, 기고문에는 '평범'이라는 단어가 49차례나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이런 국가를 위한 '새로운 질서'로 평화와 포용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평범한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은 물론, 일부 기득권층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누는 포용적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기고문에 '평화'라는 단어는 36번, '한반도'라는 단어는 26번, '북한'이라는 단어는 15번 등장하며, '포용'·'경제'라는 단어는 각각 18번씩 사용됐다.
◇ 3·1운동, 광주민주화운동, 촛불혁명…"평범한 사람들이 새시대 열어"
문 대통령은 기고문에서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 세 가지 사건으로 3·1운동과 광주 민주화 운동, 촛불혁명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이 사건들의 공통점으로 '평범한 시민'이 그 중심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에 대해 "100년 전,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 모여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나무꾼, 기생, 맹인, 광부, 머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앞장섰다"고 떠올렸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국가폭력에 맞선 사람들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고, 촛불혁명을 두고도 "촛불혁명의 영웅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적 힘"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민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인식과 함께, '촛불'을 들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 그 중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향후 국정운영의 바탕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특히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 왔음에도, 이제껏 특권층에게 성장의 과실이 몰리며 평범한 사람들이 소외됐다는 문제의식도 엿보인다.
문 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분단은 기득권을 지키는 방법으로, 정치적 반대자를 매장하는 방법으로, 특권과 반칙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이용됐다"며 "평범한 사람들은 사상과 표현, 양심의 자유를 억압받고 자기검열을 당연시하며 부조리에 익숙해졌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앞으로도 정의 실현을 위한 개혁에 매진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 평범함을 위한 항구적 평화…"신한반도체제는 곧 평화경제"
'평범한 사람을 위한 국가'를 역설한 문 대통령은 이를 떠받칠 기둥으로 '항구적 평화'와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가치를 제시, 양대 가치를 중심으로 정책을 꾸리겠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우선 '항구적 평화'의 경우, 문 대통령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평화를 강조하며 신(新)한반도체제로의 전환을 과제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분단의 역사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과 피가 얼룩져 있다. 촛불이 평화로 가는 길을 밝히지 않았다면 아직도 평화를 향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을 것"이라고 떠올렸다.
이같은 평화에의 노력은 전쟁의 위협을 없애는 것을 넘어, 새로운 번영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문 대통령의 "신한반도체제가 곧 '평화경제'를 의미한다"라는 언급이나, "남과 북이 화해하면 한국은 해양에서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 대륙에서 해양으로 나아가는 관문이 될 것" 등의 언급에서 이런 인식이 잘 드러난다.
문 대통령은 "동서독 간 철의 장막이 유럽을 관통하는 거대한 생명띠 '그뤼네스 반트'로 완전히 변모한 것처럼, 한반도의 평화가 동서를 가로지르는 DMZ에만 머물지 않고 동북아시아, 유럽까지 번져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 더불어잘사는 '포용적 질서'…정의·공정으로 뒷받침
문 대통령이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국가'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질서로 제시한 것이 '포용'이다.
이번 기고문에는 한국이 식민지배와 분단 등을 거치며 평범한 사람이 소외되고, 성장의 과실은 일부 기득권층에 편중됐다는 문 대통령의 문제 인식이 담겨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경제정책 비전으로 문 대통령은 '혁신적 포용국가'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행복할 때 한 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도 가능하다"며 "포용국가는 국가 전체가 함께 성장하고 결실을 골고루 누리는 나라"라고 규정했다.
포용국가 달성을 위해 문 대통령은 정의와 공정이라는 가치로 뒷받침을 해야 한다는 인식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권선징악이라는 간명한 진실이 정의와 공정의 시작"이라며 "정의와 공정으로 세계는 성장의 열매를 골고루 나눌 수 있게 된다. 정의와 공정 속에서만 평범한 사람들이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글은 독일의 권위지의 하나인 FAZ 출판부가 출간하는 '새로운 세계질서(가제)'에 실릴 예정이다.
FAZ 출판부는 5년에 한번 세계 주요 정상, 지도자, 종교계 인사들의 기고문을 모아 문집을 발간하며, FAZ 출판부는 "한국이 사회·경제적으로 거둔 긍정적 성과를 감안할 때, 문 대통령의 글을 수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고를 요청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앞서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8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3년에 글을 기고한 바 있다.
hys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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