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2년] ①한반도의 봄 '큰 걸음' 디뎠지만…'文 평화프로세스' 갈림길
3번의 남북정상회담·2번의 북미정상회담…선순환하며 '일상의 평화'로
공동연락사무소·GP파괴·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비핵화·남북관계 진전
하노이 결렬로 '원점 회귀' 위기…톱다운 한계 노출하며 북미관계 '냉랭'
교착 장기화하며 北 도발…한미 '절제' 속 4차 남북회담 카드로 돌파구 찾을까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 "문(재인) 대통령님을 세 차례 만났는데, 제 감정을 말씀드리면 '우리가 정말 가까워졌구나' 하는 것입니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2018년 9월 18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문재인 대통령, 2018년 9월 19일 5·1 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 만 2년을 맞았다.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에서 개혁을 추구했지만, 가장 도드라진 분야는 단연 한반도 지형 변화가 꼽힌다.
북한의 미사일·핵실험 도발로 '일상의 위협'에 시달리던 한반도에 신뢰의 주춧돌을 하나둘씩 쌓아 올려 평화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2년, 무엇보다 저 너머의 희망 사항으로만 인식됐던 한반도 비핵화가 실제로 현실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시기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평화의 물꼬를 텄던 4·27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판문점선언에 '한반도 비핵화' 문구가 담기면서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사실상 처음으로 공식화됐다.
그로부터 5개월 뒤 김 위원장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영구 폐기하는 한편 미국의 상응 조치를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으로 폐기 조치할 용의가 있음을 9·19 평양공동선언에 담는 데 동의했다.
실제로 북한은 비핵화 첫 조치로 평가되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다.
이런 비핵화 노력은 대미 관계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북미가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정상화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각인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역사적 만남이 이를 상징한다. 냉전의 시각으로는 북미 정상이 만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1년 새 두 차례나 회동한다는 것은 파격 그 자체로 평가됐다.
물론 하노이 회담 결렬로 북미 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졌지만 두 정상이 대타결을 볼 가능성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시각 역시 엄존한다.
남북관계도 국제사회 제재라는 한계 속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열렸고,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진행됐다. 제재 해제에 대비한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이 열렸고, 산림협력도 강화했다.
특히 9·19 군사합의서 채택 이후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가 잇따랐다.
군사분계선 주변 사격 훈련이 중지되고, 시범철수 대상 GP가 완전히 파괴됐다.
비무장지대(DMZ) 남북공동유해발굴 지역 내 지뢰가 제거됐고, 4·27 남북 정상회담 1년을 맞은 지난달 DMZ 평화의 길이 마침내 개방됐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을 기점으로 한반도의 봄은 뒷걸음질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미 교착을 풀고자 상황 반전용 '4차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내밀었지만, 북한의 반응은 냉담하다.
실무협상 파트너였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교체를 요구하는 등 대미 비난의 빈도와 강도를 올리고, 급기야 미사일로 추정되는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발사하면서 한반도 평화가 또다시 갈림길에 선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고 당사자가 돼라'고 하면서 그동안 북미대화의 산파역을 맡아온 문 대통령의 역할도 시험대에 올랐다.
문 대통령으로선 그간 원활했던 남북·북미관계의 '선순환'을 되살리는 게 급선무다. 북미 교착이 남북관계에 영향을 주는 '악순환'의 판을 엎어야 한다는 의미다.
작년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한때 취소했을 때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SOS'를 발신, 극비리에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이를 계기로 북미 담판이 되살아났듯이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이 유효하다는 시각은 여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9월 문 대통령에게 "미북 양쪽을 대표하는 '수석협상가'(chief negotiator) 역할을 해달라"고 한 데 이어 하노이 담판 결렬 직후에도 "적극적인 중재"를 요청했다. 김 위원장도 작년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조미 상봉의 역사적 만남은 문 대통령의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일단 문 대통령이 승부수로 던진 4차 남북 정상회담 카드가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지금까지 묵묵부답인 김 위원장이 뒤늦게라도 호응할진 미지수다.
그런 맥락에서 석 달째 이어지는 북미 간 기 싸움을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착 장기화가 북한의 4일 무력도발로 이어졌다는 인식에서다.
대치 상황이 더 길어지면 북한은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강행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 경우 그간 쌓았던 남북·북미 관계는 동시에 무너질 수 있다.
북미가 비핵화 방법론에서 이견을 보인다는 점에서 접점을 찾을 묘수 모색에도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는 전체 비핵화 로드맵에 북미가 합의한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한두 번의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빅딜' 요구와 북한의 중간 보상 개념이 개입된 '스몰딜'을 절충한 개념이다.
하지만 북미 양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은 없는 상황이다. 양측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일 더욱 정교하고 창의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하노이 담판이 보여준 '톱다운' 방식의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 실무진에서 꼼꼼한 협상을 거치는 상향식과 병행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단 북한의 4일 도발에 한미는 모두 절제된 반응을 보이면서 상황관리에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도발 13시간 만에 트위터에 "김정은은 북한의 대단한 경제 잠재력을 완전히 알고 있고 이를 방해하거나 중단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합의는 이뤄질 것"이라고 썼다. 폼페이오 장관은 5일(현지시간) "우리는 여전히 북한이 비핵화하도록 그들과 좋은 해결책을 협상할 모든 의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을 '협상 모드'로 되돌리는 데 있어 문 대통령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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