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희망 꺾이면 안되죠" 소상공인 '키다리 아저씨'

입력 2019-05-05 07:55
"어린 나이에 희망 꺾이면 안되죠" 소상공인 '키다리 아저씨'

송파구 학생·아동센터 등 돕는 사회적 협동조합 '기부 천사'



(서울=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어린 나이에 희망이 꺾일까 봐 그런 거죠. 제가 아이들을 키울 때 완전히 망해서 오갈 데가 없어진 적이 있는데 한창 클 때 저희 아이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더라고요. 그때를 생각해서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서울 송파구 소상공인으로 구성된 사회적 협동조합 '기부 천사'의 김순규(65) 회장은 5일 어린 학생들을 돕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기부 천사는 2013년 11월 결성됐다. 김 회장은 이전에도 농촌 어르신 일손 돕기, 독거노인 방문 청소 등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그러나 환갑에 접어들자 이처럼 몸으로 하는 봉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다른 나눔활동으로 눈을 돌린 이유다.

김 회장은 "처음에는 3명으로 시작했는데, 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웃 상인분들에 거의 구걸하다시피 하며 함께 하자고 했다"며 "제 이름 석 자와 얼굴을 보고 도와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후 회원은 2014년 20명으로 늘더니 지금은 160여명까지 불었다. 회원 대부분은 송파구 거여동과 마천동에서 식당이나 카센터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다. 김 회장도 석유 배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회원들은 한 달에 회비 1만원씩을 낸다.

후원 대상은 주로 어린 학생들이다. 부모가 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생계가 어려움에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주된 지원 대상이다.

이런 아이들을 지원하게 된 배경에는 김 회장의 아픈 과거가 있었다. 비슷한 아픔을 다른 아이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 1995년 완전히 망했어요. 그때 아들들이 중학생쯤이었는데 친구들은 학원에 다니지만 자신들은 다니지 못하고, 갖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 한창 클 때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았어요."

김 회장과 회원들은 주민센터 등을 통해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냈다. 지금은 학생 6명과 지역아동센터 등 기관 4곳에 매달 10만∼25만원씩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2014년 처음 후원을 시작할 때 중학교 1학년이던 학생 2명은 내년이면 대학에 간다. 상인들은 이들의 대학 등록금도 지원하기로 했다. 월 1회인 기부 천사 모임을 식당에서 여는 대신 직접 음식을 장만하는 방식으로 회비를 아껴 등록금을 마련했다.

후원 대상인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찾아가는 일도 자제한다. 명절 등 1년에 3차례만 임원 3명이 조용히 찾아가 과일 등을 전달한다. 김 회장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부 천사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얼굴이 가려진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이지만, 단체 내에서도 얼굴을 내보이지 않고 회비만 꼬박꼬박 내는 회원도 5명가량 있다고 한다.

기부 천사는 앞으로 독거노인 등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지난 3월에는 혼자 사는 한 할머니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소방서로부터 듣고 회원들이 직접 집을 고쳐주기도 했다.

김 회장은 "나 혼자 힘으로는 이렇게 도와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제가 몇백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부 천사를 잘 다져놓아 제가 죽은 뒤에도 계속해서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orqu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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