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때 이징옥 거병은 난 아닌 의거"…소설 '물망'

입력 2019-05-03 15:29
수정 2019-05-03 15:45
"단종 때 이징옥 거병은 난 아닌 의거"…소설 '물망'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조선 전기 무신 이징옥은 세종 때 북방 6진 개척에 공을 세운 용장으로 김종서의 뒤를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를 지냈다.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에 따르면 단종 때인 1453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사실상 왕권을 잡고 이징옥을 불러올리자, 서울로 오던 그는 정변을 눈치채고 돌아가 자신의 자리에 임명된 박호문을 죽였다. 그리고 스스로 대금황제(大金皇帝)라 칭하며 도읍을 오국성(五國城)에 정하려 하니 야인(野人)들이 복종했다고 한다.

이징옥은 군사를 일으켜 수양대군에 맞서려 했지만 결국 수하 장수들의 계책에 넘어가 살해됐다. 거병은 난으로, 이징옥은 역적으로 기록됐다.

강호원이 쓴 소설 '물망'(들녘)은 이러한 '이징옥의 난'이 사실은 '충신의 거병'이었음을 주장하는 역사 소설이다.

역모를 일으킨 게 아니라 종신들을 죽이고 단종을 구금 상태에 두며 왕위 찬탈에 나선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반기를 들고 종사를 정상화하고자 분연히 일어선 의거였다고 소설은 주장한다.



이징옥은 애민정치를 편 참된 수령이자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충신으로 그려진다. 저자는 '세종실록'에도 그렇게 기록됐다고 전한다.

소설 속에서 수양대군의 패악에 맞서 왕권 수호에 나선 이징옥과 수하의 북방 무장들은 명분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마치 스러져간 한의 적통을 잇겠다는 유비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는 명분 싸움이 아니라 엄연한 힘의 논리이자 현실이어서, 이징옥은 뜻을 펴보기도 전에 스러졌고 유비의 촉도 삼국의 한 축을 차지한 것으로 만족한 채 역사에 남을 뿐이다.

소설은 조선 전기 북방 역사의 한 축이었던 여진족에 대한 평가도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수양대군은 보복 차원에서 친(親)이징옥 성향 '올량합 여진족'을 숙청하는데, 이 때문에 조선 건국부터 우호적이었던 여진족과 관계가 악화한다. 올량합 독음을 변형한 '오랑캐'는 여전히 북방 민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소설은 북방 역사를 회복하는 길만이 식민사관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저자 강호원은 세계일보 베이징 특파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을 지낸 현직 언론인이다. 428쪽. 1만4천800원.

lesli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