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살해 베트남 여성 출소 "정말 행복…모든 이에 감사"(종합2보)

입력 2019-05-03 19:18
김정남 살해 베트남 여성 출소 "정말 행복…모든 이에 감사"(종합2보)

김정남 암살 연루 인물 모두 자유의 몸…배후는 미궁으로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가 공소 변경으로 징역 3년 4개월이 선고된 베트남 여성이 3일 출소했다.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31)의 변호인인 히샴 테 포 텍 변호사는 이날 오전 7시 20분(이하 현지시간)께 흐엉이 말레이시아 까장 여성교도소를 출소했다고 밝혔다.

흐엉이 석방된 것은 지난 2년여간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으며 형기를 상당 부분 채운 상황에서 모범수로 인정돼 감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히샴 변호사는 "그(흐엉)는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있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며 출소 당시 모습을 전했다.

현지 주재 베트남 대사관 관계자도 흐엉이 "행복해 보였다"고 말했다.



흐엉은 푸트라자야에 있는 이민국에서 관련 절차를 밟은 뒤 이날 저녁 7시 15분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베트남 국적 여객기를 이용해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히샴 변호사는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흐엉이 손으로 쓴 편지를 공개했다.

흐엉은 "정말 행복하고, 모든 이들에게 매우 감사드린다. 당신들 모두를 사랑한다"면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정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지지해 준 모든 이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흐엉이 이미 공항에 도착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히샴 변호사는 말레이시아 이민국 직원들이 흐엉을 비행기까지 에스코트할 것이고 현지 베트남 대사관 직원과 변호사 등이 하노이까지 흐엉과 동행할 것이라면서 "흐엉에 관해서는 이번 사건이 완전히 종결됐다"고 말했다.

흐엉은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7·여)와 함께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이들은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들의 말에 속아 살해 도구로 이용됐을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실제 두 사람에게 VX를 주고 김정남의 얼굴에 바르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된 리재남(59), 리지현(35), 홍송학(36), 오종길(57) 등 북한인 용의자 4명은 범행 직후 출국해 북한으로 도주했다.

반면, 현지에 남은 시티와 흐엉은 VX가 묻은 옷가지를 객실에 방치하는 등 증거조차 없애지 않은 채 어슬렁거리다가 범행 2∼3일 만인 2017년 2월 15일과 16일 잇따라 체포됐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최소 8명의 북한인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밝혔지만 체포한 인물은 약학과 화학 전문가로 알려졌던 리정철(48)뿐이고 그나마도 수일 만에 증거불충분으로 석방했다.

현지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46)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9), 시티를 섭외하고 예행연습을 시킨 북한인 리지우(일명 제임스·32) 등 다른 연루자들은 치외법권인 대사관 내에 숨는 바람에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북한이 자국 주재 말레이시아 외교관과 민간인을 전원 억류하는 '인질외교'를 벌이는 바람에 김정남의 시신과 함께 출국을 허용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리정철이 수개월 뒤 중국의 한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을 모두 놓쳐버린 말레이시아 검찰은 김정남을 살해할 당시 시티와 흐엉이 보인 모습이 '무고한 희생양'이란 본인들의 주장과 거리가 있다면서 두 사람의 유죄를 입증하는데 열을 올려왔지만, 올해 3월 11일 시티에 대한 공소를 돌연 취소하고 그를 석방했다.



검찰은 지난달 1일에는 흐엉의 살인 혐의를 철회하고 상해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했으며, 법원은 그에게 징역 3년 4개월을 선고했다. '모범수' 흐엉은 감형을 받아 이날 출소했다.

말레이시아 형법은 고의적 살인에 대해 예외 없이 사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지에선 달아난 주범들에게 이용됐을 뿐일 가능성이 있는 동남아 여성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가는 외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공소를 취소, 변경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북한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정남이 아닌 '김철'이란 이름의 자국민이 단순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리재남 등 4명은 그가 숨진 시점에 우연히 같은 공항에 있었을 뿐이란 입장을 보여왔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인 용의자 4명을 '암살자'로 규정하면서도 북한 정권을 사건의 배후로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다.

이로써 김정남 암살에 연루됐던 인물들은 전원 자유의 몸이 됐으며, 김정남 암살을 지시한 배후의 실체는 영원히 미궁으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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