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신생팀 BNK 유영주 감독 "긴장들 좀 하셔야 될걸요"

입력 2019-05-01 08:03
여자농구 신생팀 BNK 유영주 감독 "긴장들 좀 하셔야 될걸요"

선수단 전원 여성으로 구성 '소통하는 팀 분위기 만든다'

"농구하는 쌍둥이 아들들, 엄마 부산 간다니까 너무 좋아해"



(부산=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정국장님, 보니까 애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여자프로농구 부산 BNK 유영주(48) 감독이 지난달 30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정상호 사무국장에게 당부한 말이다.

힘든 오후 훈련을 마친 뒤 저녁 식사 반찬에 고기가 부족하다며 엄마 같은 세심한 마음으로 메뉴까지 신경을 쓴 것이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코트 위에서 훈련을 진행하며 힘들어서 주저앉는 선수들을 "퍼질러지면 안 된다"고 일으켜 세우던 '저승사자'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6월 창단식을 앞둔 BNK의 사령탑에 선임된 유영주 감독은 여자프로농구에서 통산 두 번째로 나온 여성 감독이다.

이옥자 감독이 BNK의 전신인 KDB생명에서 2012년부터 약 1년간 지휘봉을 잡았고 그다음이 올해 BNK의 유 감독이다.

그러나 감독대행까지 포함하면 여자프로농구 사상 최초의 여자 사령탑은 바로 유 감독이다.

국가대표 명 포워드 출신으로 이름을 날린 유 감독은 2001년 은퇴 후 그해 10월 KB국민은행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2002년 7월 당시 박광호 감독의 사퇴로 감독대행을 맡았다.

또 이후 네 번째 경기에서 삼성생명을 제압,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승리를 따낸 최초의 여자 사령탑이 바로 유 감독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KDB생명 코치로 일한 유 감독은 4년 만에 현장에 복귀, 지난달 29일부터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2002년 31세 젊은 나이에 감독대행을 맡았던 유 감독은 지난달 30일 오후 훈련을 마치고 만난 자리에서 "17년 만에 다시 팀을 이끌게 됐는데 저 개인적으로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고 싶지는 않고 하나씩 잘 만들어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 감독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선수 때도 보약 같은 걸 따로 챙겨 먹은 적이 없었지만 요즘은 힘드니까 비타민 같은 것도 먹고 그런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는 "운동만 가르쳐도 힘든 자리인데 창단 팀이라 이것저것 챙길 부분이 더 많다"며 "양지희 코치는 '선수 때가 차라리 더 낫다'고 하지만 앞으로 1, 2주 정도는 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양지희 코치는 아산 우리은행에서 선수로 뛰면서 위성우 감독의 '지옥 훈련'을 견디다 못해 "차라리 길을 지나가는 개가 되고 싶었다"는 명언을 남긴 주인공이다.

BNK는 감독, 코치, 지원 스태프 등 선수단 전원을 여성으로 구성해 화제가 된 팀이기도 하다. 20여명의 선수단 가운데 남자는 전력분석원 허윤성 씨가 유일하다.

유 감독은 "저희 선수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구성"이라며 "그래도 국제 대회를 나가보면 미국이나 유럽 팀들은 벤치에 있는 전원이 여자인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근사해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제 모여서 훈련을 시작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여성으로만 구성된 팀 분위기'에 대해 유 감독은 "소통하는 팀을 꼭 만들고 싶다"고 소망했다.

KDB생명 코치였던 2015년부터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유영주의 템포 바스켓'이라는 칼럼을 써왔다는 유 감독은 "그 글을 지금 봐도 소통하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라고 밝혔다.

평소 소탈한 성격에 재미있는 농담도 곧잘 하는 유 감독은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서 '이제 감독이 됐으니 스타일 좀 바꿔라'는 얘기를 많이 하신다"며 "그런데 저는 심각한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성격까지 바꿔가며 그래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체육관에서는 강한 감독이 되고, 생활로 돌아와서는 스스럼없이 농담도 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주위에서 '감독이 뭐 저래'라고 할지 몰라도 우리 팀은 그러면 좋겠다"고 추구하는 팀 분위기를 설명했다.

KDB생명 코치 시절 막내급이던 선수들이 지금은 세월이 지나 이 팀의 중간 허리급으로 성장한 것도 유 감독이 선수단 파악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 됐다.

유 감독은 "그때 있던 선수들에게 '내가 온다는 소리 듣고 기분이 어땠냐'고 물어보니 '무서워서 걱정됐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힘들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말들도 하더라"며 "그때 구슬에게 '너 연봉 1억원 되면 선생님 뭐 사줄 거냐'고 농담처럼 했었는데 이번에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구슬이 억대 연봉을 받게 됐다"고 흐뭇해했다.

4년 전 제자들을 다시 만난 것은 보람된 일이지만 송도중학교에서 농구 선수의 꿈을 키워가는 쌍둥이 아들들과 떨어져 지내게 된 것은 엄마로서, 농구 선배로서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다.

유 감독은 "이것들이 엄마가 부산에 간다니까 쾌재를 부르더라"며 "애들은 사춘기, 저는 갱년기라 엄청나게 싸웠는데 그래도 떨어져 지내니 더 애틋해진 것 같다"고 특유의 '긍정 에너지'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현역 시절 아시아를 호령하는 '파워 포워드'였던 유 감독이 "애들이 말 안 듣고 그럴 때는 '너희가 힘으로 엄마를 이길 수 있을 때 까불어라'라고 제압한다"고 하기에 '남자 중학생이면 이제 엄마보다는 힘이 더 센 것 아니냐'고 물었다.

유 감독은 "저 유영주예요"라고 답했다.



아직 이르지만 2019-2020시즌 목표에 대해 유 감독은 "우리는 특별한 에이스가 없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 팀"이라며 "모든 선수가 위기 때 해줘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상대에게는 긴장감을 주고, 팬들에게는 재미를 주는 팀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여성으로 구성된 팀이라 회사에서는 세련된 이미지를 원하는 부분도 있다"며 "힘들어도 재미있게, 웃으면서 하는 팀 분위기가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시너지 효과가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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