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광석 오르는데 제품값 못 올리고…철강업계 '이중고'
자동차·조선·건설 등 수요처 업황 부진에 가격 협상 난항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철강업계가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급등했는데도 조선, 자동차 등 수요업계의 부진으로 제품가격을 쉽사리 올리지 못하는 이중고에 처했다.
철강사들은 원재료 가격 인상분을 제품가격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주요 수요처는 동결 혹은 인하를 요구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1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4월 26일 기준 철광석 가격은 t당 93.93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12일 95.1달러로 약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2주 연속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철광석 가격은 지난 1월 4일 72.63달러에서 꾸준히 올라 2월 1일 82.05달러로 80달러 선을 돌파했고 지난달 5일 91.49달러로 90달러 선을 넘어섰다.
브라질, 호주 등 주요 철광석 생산지에서 천재지변으로 공급 차질을 빚은 것이 철광석 가격을 끌어올리는 주된 요인을 작용했다.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치솟으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제품을 잘 팔고도 수익성은 오히려 나빠졌다.
현대제철[004020]은 지난달 30일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5조71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0%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7.6% 감소한 2천124억원에 그쳤다고 밝혔다.
포스코[005490]의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보다 19.1% 줄어든 1조2천29억원으로 집계됐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영업이익 감소의 이유로 원료가격 상승을 지목했다.
포스코는 지난달 24일 콘퍼런스콜에서 "지난 1분기 철강제품 판매 증가로 매출이 늘었음에도 광석 공급 차질에 따른 원재료 가격 인상을 판매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탓에 영업이익은 하락했다"고 밝혔다.
현대제철 역시 1분기 실적발표 후 이뤄진 컨퍼런스콜에서 "원료가격 상승분을 시장에 전가하지 못한 것이 이번 실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는 2분기 중에는 철강제품 가격을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자동차, 조선, 건설업계 등 주요 수요처와 가격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컨퍼런스콜에서 "자동차 강판의 경우 해외가격은 30∼40달러 인상요인이 있다고 보고 협상에 나서고 있다"며 "국내 가격도 해외가격과 맞물려 전체적인 스프레드(제품과 원료가격의 차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동차, 건설, 조선 등 철강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업종의 업황이 모두 부진한 상황이라 철강업계의 요구가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예컨대 현대제철과 자동차 강판 협상을 진행 중인 현대·기아차의 경우 악화한 실적을 이유로 제품가격 인하 또는 동결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1월 24일 콘퍼런스콜에서 "(자동차 강판) 가격 인상 계획이 없으며 오히려 낮춰야 한다는 압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박 건조에 주로 쓰이는 후판(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 협상은 현재 막바지 단계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어느 선에서 협상이 이뤄질지는 조선업계와 철강업계 모두 말을 아끼고 있다.
조선사들의 모임인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지난 3월 7일 성명을 내 "철강업계는 조선소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후판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건설업계와는 월별 고시제를 두고 대립 중이다.
최근 동국제강[001230], 현대제철은 철근 가격을 매월 건설공급자에게 고시하는 월별 고시제를 도입했다. 저가 수주를 막고 시장 상황에 따라 적정한 철근 가격을 결정해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자재구매담당자 모임인 건설업계에 불리한 가격 결정 방식이라고 반발하며 철근 수입 확대 등으로 철강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원재료 가격 인상에 맞춰 제품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수요처의 불황이 길어지면서 원하는 가격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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