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 청소 떠넘기기에 '공짜 노동' 시달리는 '컨' 기사들

입력 2019-05-02 15:09
수정 2019-05-02 17:23
선사들 청소 떠넘기기에 '공짜 노동' 시달리는 '컨' 기사들

부산신항 불량 컨테이너 비율 46%…기사들 청소·수리하느라 연간 47억원 손해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부산항을 이용하는 해운선사들이 상태가 나쁜 컨테이너의 청소나 수리를 떠넘기는 바람에 트레일러 기사들이 공짜 노동에 시달리고, 연간 수십억원을 손해 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부산항만공사가 처음으로 벌인 부산항 빈 컨테이너 유통 실태조사 결과 밝혀졌다.

항만공사는 지난해 11월 한 달간 부산신항 3개 터미널에서 반출된 빈 컨테이너들 가운데 9천278개를 대상으로 내외부 상태를 조사하고, 불량 컨테이너 때문에 기사들이 허비하는 시간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 등을 분석했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태조사는 업계 전문가들에게, 결과 분석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맡겼다.

2일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컨테이너들의 절반에 가까운 46%는 청소가 안 됐거나, 심하게 녹이 슬었거나, 찌그러지거나, 구멍이 있는 등 상태가 불량했다.



이런 컨테이너들은 기사들이 직접 청소나 간단한 수리를 해서 가져가거나, 터미널 내 수리·세척장에 반납한 뒤 다른 것으로 바꿔 갔다.

이 때문에 장치장에서 컨테이너를 차에 싣고 나서 검사장을 거쳐 터미널 출구를 빠져나가기까지 시간이 상태 좋은 컨테이너보다 배 이상 걸렸다.

깨끗한 컨테이너는 평균 11분이면 출구를 통과했지만, 불량 컨테이너는 기사들이 청소나 수리, 교환하느라 최대 26분이 걸렸다.

해양수산개발원 박용안 연구위원은 불량 컨테이너 청소, 수리, 반납 등 추가 작업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부산신항에서만 연간 46억9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2017년 신항에서 반출된 빈 컨테이너 156만4천여개 가운데 불량 컨테이너 72만여개, 트레일러 기사 임금 월 300만원(월 22일, 1일 8시간 근무), 하루 운임 45만원을 적용해 산출한 결과이다.

선사들이 청소 등 추가 작업에 대해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기사들로선 그만큼 손해를 보는 셈이다.

외국에서 들여온 불량 컨테이너로 인한 손해(35억3천여만원)가 국내 재유통 컨테이너(11억5천여만원)의 그것보다 훨씬 컸다.



이번 실태조사는 신항만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북항까지 포함하면 기사들이 추가 작업 때문에 보는 손해는 더 늘어난다.

북항은 부산항 전체 물동량의 30% 정도를 처리한다. 부산항 전체로 따지면 연간 70억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기사들은 "선사들이 화주에게서 컨테이너 청소비 명목으로 돈을 받으면서도 청소 등을 떠넘기고 아무 보상도 하지 않는 것은 노동착취나 다름없다"며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선사들은 수입 화주에게 20피트 컨테이너는 개당 2만5천원, 40피트짜리는 개당 4만원 정도의 청소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선사들은 외국에서 들여온 빈 컨테이너를 검사도 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터미널 장치장에 쌓아두고, 터미널 운영사들은 그대로 수송기사들에 배정한다.

이 때문에 많은 기사가 불량 컨테이너를 받아 직접 청소나 수리를 하는 일이 벌어진다.



기사들은 "상태가 나쁜 컨테이너를 교환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데다 다시 받은 컨테이너도 깨끗하다는 보장이 없다"며 "화주와 약속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웬만하면 직접 청소나 간단한 수리를 해서 가져가는데 선사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 이모 씨는 "이번에 실태조사를 통해 기사들이 청소 등을 하느라 허비하는 시간과 비용이 드러난 만큼 정부 관계부처와 항만공사가 선사들의 횡포를 바로잡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만공사 관계자는 "올해 부산항 전체 터미널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확대해 이를 토대로 수송기사들이 겪는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을 관계 당국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lyh950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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