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71년 만에 희생자 첫 재심 재판 시작

입력 2019-04-29 15:53
여순사건, 71년 만에 희생자 첫 재심 재판 시작

재판부 "우리의 아픈 과거사, 유가족은 통한의 시간이었을 것"

검찰·변호인 "실체적 진실 규명해 희생자와 유가족 명예회복 노력"

유가족 "희생자 명예 회복해달라·이른 시간에 재판 마쳐달라"



(순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첫 재심 재판이 29일 열렸다.

이날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김정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장모 씨 등 3명에 대한 내란 및 국권문란 사건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심리를 시작하기 전 10분 가까이 할애해 진실규명을 다짐하고 법률적 한계를 우려하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건물과 운동장, 산천에 아로새겨진 우리의 아픈 과거사"라며 "사건 발생 71년, 재심 청구 8년이 지나는 등 유가족들에겐 너무도 길었던 통한의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재심 개시를 확정한 대법원의 결정문을 정독했다고 밝힌 재판부는 "대법원도 여순사건은 민간인이 희생된 비극적인 집단 학살 사건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전제로 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희생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 명예회복을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고 법원이 부족하게나마 그 책무 중 일부를 해야 한다"며 "현행법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통한의 세월을 보내온 유족의 한이 얼마나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검찰과 변호인도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노력하기로 다짐했다.

검찰은 "재심이 시작된 역사적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 책임감 있게 재판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재심 절차는 당시 어떤 이유로 선고를 했는지 알아야 선고의 이유가 정당했는지 밝힐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 사건은 판결서가 존재하지 않고 명령서만 존재해 심판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경우 공소 기각될 수밖에 없지만, 절차적인 문제 때문에 공소가 기각되는 것은 실체적 진실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당시 군법 재판 자료를 수집해 심판 대상을 특정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변호인 역시 "희생자들이 무고하게 판결을 받은 내란죄의 실체를 밝히고 명예 회복할 수 있는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검찰이 요청한 재판 진행절차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재심 청구인인 희생자 유족 장경자씨는 심경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오랫동안 묻혀있었고, 반란이라는 불명예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왔다"며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장씨는 재심을 청구한 유가족 3명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남아있는 희생자 가족들도 살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며 "재판을 이른 시일 안에 마쳐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오는 6월 24일 2차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사망한 재심 청구인 2명에 대한 재판 진행절차를 심리할 예정이다.

1948년 10월 당시 순천시민이었던 장모씨 등은 국군이 반란군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한 직후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곧바로 사형당했다.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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