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日 레이와 시대에 새로운 한일관계 기대
(서울=연합뉴스) 다음 달 1일 새 일왕 나루히토(德仁)의 즉위와 함께 새 연호인 레이와(令和) 시대가 열린다. 일본에서는 천황(天皇)으로 불리는 일왕은 국정에 관여하지 못하는 상징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사회 통합의 최상위에 있는 구심점이어서 새 왕의 즉위는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을 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초청하면서 일왕 즉위 행사가 미국의 슈퍼볼보다 100배 크다며 트럼프의 방일 동의를 끌어낼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25~28일 일본으로 건너가 새 일왕이 주최하는 궁중만찬에 참석한다.
레이와는 고대 시가집 '만요슈'(万葉集)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맑고 온화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한다. 새 연호를 고안하는 과정에 참여한 나카니시 스스무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명예교수는 "레이와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다"며 아베 신조 총리 정권에서 두드러지는 군사 대국화 경향을 비판했다. 나카니시 교수 같은 양심적인 지식인의 말처럼, 우경화의 길을 걷는 아베 정부가 새 연호의 정신에 걸맞게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길 기대한다.
새 왕과 연호 시대 개막은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하고 진정성 있게 청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30일 퇴위하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과거 일본 군국주의가 촉발한 전쟁을 반성하고 역사서를 토대로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일본의 과거사를 외면하는 아베 총리와는 대비되는 행보였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직접 사과 등 명쾌한 수준의 과거사 정리에는 이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왕위를 이어받는 나루히토 왕세자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60년에 태어난 전후세대여서 주목된다. 부친과 달리 과거사 관련 부채 의식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과거사를 직시하는 보다 융통성 있는 역사관을 지닐 수 있다. 여론조사들에서는 58%가 레이와 시대에 일본이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답했고 73.7%가 새 연호에 호감을 나타내는 등 새 일왕이 맞이하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아베 정부는 6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이어 내년 도쿄올림픽 개최까지 호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열린 마음으로 주변국을 대하길 바란다. 새 일왕의 활동이 현실 정치와 외교에서 부정적으로 이용돼서도 안 된다.
새로운 일왕 시대는 역대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는 한일관계를 복원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한일관계는 부침을 거듭해 왔지만 요즘 관계 경색의 큰 원인은 아베 정권의 정책에 있다. 아베 정권은 지지층 결집과 집권 연장을 꾀하는 수단으로 우경화, 군사 대국화, 한일 갈등을 꾀하고 부추긴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일본 정부가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 외교에 치중하며 한국을 외면하고 있지만 악화 일로에 있는 한일관계를 방치할 수는 없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일본 내 반한 감정 증가도 신경 쓰인다. 사소한 말과 사건을 계기로 갈등이 격화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 나루히토 일왕 즉위와 새 연호, G20 정상회의 등 일련의 변화와 정상외교를 계기로 큰 틀에서 출구가 모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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