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사는' 지자체 금고…비자금에 소송까지 진흙탕 싸움
공개 입찰로 '지방은행·농협은행' 양대 권력 무너져
출연금 내고 금리 깎는 출혈 경쟁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성서호 한혜원 기자 = "지자체 금고 은행으로 선정되면 예산 운용만 하는 게 아니다. 지자체 소속 공무원, 산하기관 직원, 그리고 그 가족까지 은행 고객이 된다고 계산하면 수천억원을 충분히 내걸 만한 조건이다."(시중은행 관계자)
은행들이 지자체 금고은행 공개 입찰에서 협력사업비와 예금·대출금리를 파격적으로 제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신인도를 높이고 고객을 확보한다는 의미 때문에 공개 입찰이 '출연금 경쟁'으로 변질되고 소송전까지 벌어지는 등 출혈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자체 금고 선정은 예전에는 지자체와 금융기관이 수의계약을 맺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공개 입찰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여러 은행이 '조건'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
지역에서는 지역은행과 농협은행이 대부분 지자체 금고를 차지하던 상황에서 시중은행도 똑같이 경쟁에 뛰어들게 됐다.
은행들은 지자체 금고 은행 선정이 상징성도 있지만, 광역시의 경우 많게는 수백만 명의 잠재 고객을 확보할 기회이기에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신한은행이 작년 서울시 1금고 은행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협력사업비를 3천50억원이나 낸다고 써낸 것이 내부에서는 '남는 장사'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작년부터 대전광역시 1금고 운용사로 선정된 하나은행은 작년 한 해 동안만 대전광역시와 시내 구청에 협력사업비 34억원을 줬다.
수원시 금고를 맡은 기업은행[024110]은 작년에 86차례에 걸쳐 모두 54억원을 지역사회기여금과 출연금으로 냈다.
신한은행은 작년에 인천광역시청에만 120억원을, 인천 내 구청 7곳에 8억7천500만원을 협력사업비로 지출했다.
지자체 금고의 68%를 차지하는 농협은행은 최근 3년간 지자체에 낸 협력사업비만 연간 508억∼559억원에 달한다. 작년 한 지자체에는 한 번에 100억원을 출연했다.
한 지역 금고 은행 관계자는 "지자체에서는 우리가 지자체 금고를 오래 한 점은 높이 평가해도 시중은행과 출연금이 확연히 차이가 나기에 우리가 절대 유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광주 광산구에서는 법적 분쟁까지 진행 중이다.
광산구는 작년 10월 KB국민은행을 1금고 운영기관으로 선정해 1988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광산구 금고가 농협은행에서 국민은행으로 넘어가게 됐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행은 농협은행보다 3배 많은 64억4천만원을 지역사회기부금과 협력사업비로 제시했다.
게다가 선정 과정에서 심의위원 명단이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 농협은행이 광산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올해 1월에는 신한은행 전 지점장 A씨가 인천시 금고로 선정되기 위한 로비자금을 조성하려고 억대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업무상횡령)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와 신한은행 본점 전 팀장 B씨는 신한은행이 인천시 금고로 선정되게 하려고 회사 자금을 몰래 빼돌려 현금을 만든 뒤 로비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 금고 선정에서 과도한 경쟁을 막고자 100점 만점 평가 기준에서 협력사업비 배점은 기존 4점에서 2점으로 낮추고 금리 배점을 15점에서 18점으로 높이는 새로운 평가 기준을 지난달 마련했다.
그러나 관내 지점 수, 지방세입금 수납처리능력, 납부 편의 증진 방안 등을 포함한 '지역주민이용 편의성' 비중은 18점에서 17점으로 낮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출연금 경쟁이 금리 경쟁으로 옮겨붙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일규 부산경실련 팀장은 "협력사업비 비중을 낮춘 것은 지방은행 눈치를, 금리 점수를 올린 것은 시중은행 눈치를 본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며 "지역주민의 이용 편의성이나 지역사회 기여 실적을 높이는 방향으로 평가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금고 지정이 예정된 지자체는 대구, 울산, 충남, 경북, 경남 5개 광역단체와 44개 기초단체까지 49곳에 달한다.
hye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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