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 합격자 수' 놓고 끝모를 갈등…법무부, 9년만에 재검토

입력 2019-04-26 21:00
'변시 합격자 수' 놓고 끝모를 갈등…법무부, 9년만에 재검토

로스쿨-변협 갈등 심화에 합격 결정기준 재논의키로

올해 합격률도 50%대 턱걸이…법률시장 포화 속 '변시 낭인'도 속출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그간 법조계 갈등을 빚어왔던 변호사시험(변시) 합격 기준에 대해 법무부가 재검토 카드를 꺼내 들었다.

'변시 합격자 수'를 두고 변호사 업계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의 갈등이 극에 달한 가운데 합격자 규모와 기준을 새롭게 논의해보자는 취지다.

로스쿨생들은 변시를 '정원제' 선발 시험처럼 운영하는 대신 의사나 한의사 시험처럼 '자격시험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변호사단체는 오히려 합격자를 줄여야 한다고 맞선다.

◇ 법무부, 소위원회 구성…"합격자 결정기준 연구·검토"

법무부는 26일 변시 관리위원회를 열어 2019년도 제8회 변시 합격자 발표와 함께 '변시 합격자 결정기준을 소위원회에서 재논의하는 방안'을 안건으로 통과시켰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주최한 '로스쿨 교육 정상화를 위한 변시 제도의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변시 합격 결정 방법에 대해선 장기적으로 가장 적합한 기준이 무엇인지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소위원회는 변시 관리위원 중 6명으로 구성된다. 활동 기한은 오는 8월(연장 가능)까지다.

법무부는 "소위원회가 그간 축적된 자료와 변화된 상황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가장 적합한 합격자 결정기준이 무엇인지를 연구,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1회 변시가 치러진 이후 이 같은 별도 조직이 구성돼 합격자 기준 재검토에 나선 건 9년 만에 처음이다.

현재 합격자 기준은 '정원제'에 가깝다.

법무부는 2010년부터 '로스쿨 입학정원(약 2천명)의 75%인 1천500명 이상'이란 기준 등을 적용해왔다. 매년 합격자 수를 1천500명 전후에서 결정하는 사실상 '정원제'로 운영해왔다.

문제는 시험 회차가 거듭될수록 재응시자가 누적되며 합격률이 크게 떨어진 데 있다.

변시 합격률은 2010년 1회 시험 당시 87.15%부터 2회 75.17%, 3회 67.63%, 4회 61.11%, 5회 55.2%, 6회 51.45%로 하향 곡선을 그려왔다.

급기야 작년 7회 시험에서는 49.35%를 기록하며 합격자 수가 응시자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발표 난 8회 시험 합격률은 50.8%를 기록했다. 3천330명이 응시해 1천691명이 합격했다.

응시생 2명 중 1명은 떨어졌다는 얘기지만, 작년보다는 소폭 상승한 수치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속적인 합격률 하락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로스쿨 교육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변시 관리위는 객관식인 선택형 시험 과목이 헌법·민법·형법 등 3과목으로 축소됨에 따라 사례형 시험의 배점을 증가시켜 총점을 유지하기로 했다.

기본적 법률 과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유도하기 위한 개선안이다. 변호사시험법령 개정 절차를 밟은 뒤 2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두고서 시행된다.

변시 응시 자격을 졸업 후 5년 이내 5회까지로 제한했던 기준을 완화하고, 전문적 법률 분야에 관한 과목시험의 개선방안에 대해서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로스쿨 "응시자 대비 75% 이상" vs 변협 "지금도 포화상태"

이번 법무부가 합격자 기준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로스쿨 학생들과 기존 변호사 업계의 '논리 싸움'도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로스쿨 학생들은 변시 합격자 수를 통제하는 대신 자격시험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는 지난 24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입학정원 대비 75% 이상'에서 '응시자 대비 75% 이상'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행 합격률의 정상화만이 시험을 위한 법학 교육에서 벗어나, 전문적·다원적 식견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고 국가 우수 인력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제도 도입 취지를 백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입 10년을 맞은 로스쿨 제도가 '1천500명의 정원제 선발시험'처럼 운영돼다보니 과거 사법시험과 비슷한 폐단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사시 낭인(浪人)'을 없애겠다며 도입한 로스쿨이 이제는 '변시 낭인'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반면, 국내 최대 변호사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합격자 수를 오히려 더 줄여야 한다고 맞선다.

변협에 따르면 사법시험과 로스쿨 제도가 약 10년간 병행 유지됨에 따라 한 해 배출된 법조인 수는 2009년 980명에서 2013년 2천364명까지 늘어났다. 작년에는 1천770명의 법조인이 배출됐다.

변협은 지난 19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전체 소송사건 건수의 경우 거의 변화가 없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법조유사직역의 통폐합, 축소를 회피하고 변호사 숫자만을 늘리는 건 로스쿨 제도의 존립과 변호사 및 법조유사직역 자격사 제도의 근간을 흔들 뿐"이라고 주장했다.

변협은 최근 법무부에 제출한 의견서에 '법조유사직역의 통폐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변호사 1천명이 배출되는 게 적당하다'는 주장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갈등은 법조계 내부의 갈등으로 확산할 조짐도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변시 과거 사법시험과 비슷한 폐단을 낳고 있다며 관련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로스쿨 학생들의 주장과 맥락을 함께 하는 것이다.

민변은 "우선 '교육'의 관점에서 변호사시험의 운영을 평가·개선할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로스쿨 교육의 내용을 평가하는 별도의 기구를 마련해 교육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sj997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