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전후세대' 새 일왕 행보 주목
(도쿄=연합뉴스) 김정선 특파원 = 지난 2016년 생전퇴위 의향을 밝혔던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오는 30일 물러나고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5월 1일 즉위한다.
이에 따라 30년간 계속된 '헤이세이'(平成·현재 일본의 연호) 시대가 저물고 일본은 '레이와'(令和)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아키히토 일왕은 아사히신문이 지난 19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왕실에 친밀감을 갖고 있다'는 응답이 76%로 나타나는 등 재임 기간 대중 친화적인 왕실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전쟁에 대한 '반성'과 한국과의 '인연'을 거론한 적이 있다.
현재 일본 헌법상 일왕은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이며, 그 지위는 주권이 있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반한다고 규정돼 있다.
1933년생으로 올해 12월 만 86세가 되는 아키히토 일왕은 침략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 원수' 히로히토(裕仁·1901~1989)의 아들이다.
그는 1995년에 원자폭탄 피폭지인 나가사키(長崎)와 히로시마(廣島)를 찾았고 중국, 필리핀 등 일본이 저지른 전쟁으로 피해를 본 나라를 방문했다.
그는 한국을 거론하거나 연관 있는 장소를 찾기도 했다.
2001년에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에는 사이판의 한국인 전몰자 위령지인 '한국평화기념탑'에 참배했다. 2007년엔, 도쿄의 지하철 선로에 추락한 일본인을 구하다가 숨진 의인 이수현 씨 추모영화 시사회에 참석했다.
2012년에는 '왕비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일본 매체에 보도된 적이 있다. 헤이세이 시대에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아키히토 일왕 부부는 2017년 일본 내 고구려 왕족을 모시는 사이타마(埼玉)현의 고마(高麗·'고구려'라는 뜻)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화해 메시지'로 간주된 그의 행보는 과거사를 외면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종종 대비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8월 15일 일본의 2차대전 패전일에 열린 희생자 추도식에서 아베 총리와는 달리 그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해 말 85세 생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선 "헤이세이가 전쟁이 없는 시대로 끝나게 된 것에 안도하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이달 4일 파나마 대통령 부부를 만난 자리에서 "헤이세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일본인들에게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해 지역을 방문, 무릎을 꿇고 이재민과 대화하는 모습 등을 통해 국민에게 다가가는 이미지로 남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직접 사과 등 '파격적' 수준의 과거사 해소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제는 왕위를 이어받는 나루히토 왕세자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태어난 '전후세대'로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재임 중 전쟁이 없었던 부친의 연호 헤이세이(平成)의 '평(平)'을 자신의 연호 레이와(令和)의 '화(和)'로 완성해나갈 것이냐가 관건이다.
우선 나루히토 왕위 계승자는 그동안 왕세자 신분으로 대외활동을 자제해 부친보다 더 조용한 이미지가 있다.
그는 헌법과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발언을 보면 부왕과 기본적인 관점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1960년생인 나루히토는 2014년 생일을 맞아 한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일본은 전후 일본 헌법을 기초로 삼아 쌓아 올려졌고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며 "헌법을 지키는 입장에 서서 필요한 조언을 얻으면서 일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듬해에는 "전쟁의 기억이 흐려지려고 하는 오늘날, 겸허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비참한 경험이나 일본이 밟아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즉위를 1년 앞둔 지난해에는 새로운 시대 일왕의 존재 방식에 대해 "오랜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행 헌법에서 규정된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상징'의 역할을 강조했다.
올해 2월 59세 생일을 맞아 한 공동 인터뷰에서도 "국민 곁으로 항상 다가가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면서 상징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반복했다.
이는 헌법에 기초한 일왕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부친에 대해선 "지금까지 고생하고 노력하신 것에 대해 존경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나루히토 왕세자가 내달 즉위하며 시험대에 서지만 어떤 길을 걸을지 우려 섞인 기대가 함께 나오는 측면도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일왕의 상징으로서의 활동이 정치의 영향력도 받았다고 지난 24일 지적했다. 일왕의 활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 일왕이 내달 즉위 후 처음으로 만날 외국 정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일왕으로서 외교무대의 첫 데뷔에서 어떤 메시지를 꺼낼지 주목된다.
새 일왕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까지는 3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 대국화 등과 맞물려 새 일왕의 행보가 어떻게 비칠지도 관심거리다.
나루히토 왕위 계승자는 2004년 도쿄(東京)에서 열린 음악회에 정명훈(피아노)과 같은 무대에 올라 비올라를 연주한 적이 있다.
물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루히토 왕세자는 2015년 한국에서 개최된 세계 물 포럼과 관련해 일정상 참석하기 어렵다며 아쉬움을 표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33살이 되던 해인 1993년 미국 하버드대 출신으로 자유분방하고 촉망받는 외교관이었던 마사코(雅子)와 결혼했다.
마사코 왕세자빈은 2001년 아이코(愛子) 공주를 출산한 뒤 2003년 적응 장애로 요양에 들어갔다. 왕실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마사코 왕세자빈은 지난해 결혼 25주년을 맞아 진행된 일본 언론과의 서면 질의·응답에서 "많은 기쁨과 슬픔도 있었지만, 왕세자가 언제나 나를 지지해 줬던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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