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전쟁 속에서 표류하는 미국

입력 2019-04-25 15:34
끝없는 전쟁 속에서 표류하는 미국

레이첼 매도, '전쟁 국가의 탄생' 펴내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평화는 쉽게, 전쟁은 어렵게'. 이는 초기 미국을 지배하는 이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딴판이 돼버렸다. '평화는 멀리, 전쟁은 가까이'라고나 할까? 미국은 다른 모든 국가의 지출액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액수를 군사주의에 소비한다.

미국의 진보적 정치 평론가 레이첼 매도는 저서 '전쟁 국가의 탄생'을 통해 미국이 원래의 이상에서 멀어져 전쟁 속에서 끝없이 표류하는 이유를 파헤친다. 그러면서 평화를 지향하던 미국이 영구적인 전쟁을 오히려 편안하게 여기는 나라가 됐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에 24시간 뉴스를 제공하는 케이블 채널 MSNBC의 평일 종합 시사 프로그램 '레이첼 매도 쇼'에서 2008년부터 진행을 맡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에미상 수상작으로 선정돼 더욱 화제가 됐다.

매도는 이번 신간에서 베트남 전쟁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를 살피며 미국이 왜 이토록 위험천만한 국가가 돼버렸는지 하나하나 되짚는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본래부터 전쟁을 지향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건국 초기의 지도자들이 가장 경계했던 게 바로 전쟁이었던 것이다.

예컨대, 토머스 제퍼슨은 "무척이나 위험한 도구인데도 통치자의 재량에 맡겨놓은 도구가 상비군"이라면서 "통치자는 엄격히 정해진 경우를 제외하고 그런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게 규제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알렉산터 해밀턴도 전쟁 선포 권한을 결정권자 한 명의 손에 두는 것이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경계했다.

이들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에 대항키 위해 구조적 장벽을 구축하려 했다. 미국 헌법은 의도적 신중을 기해 전쟁에 대한 질문을 입법부에 귀속시켰다. '평화는 쉽게, 전쟁은 어렵게'라는 초기 미국 사회의 이상이 견지돼온 배경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실상은 어떤가. 저자는 "무장 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모습을 보이는 방법을 더 이상 알지 못하는 것처럼 되었다"며 이같이 비판한다.

"우리는 전쟁에 나가는 버릇을 들이게 되었다. 마치 평화를 누리는 것이, 즉 '아늑하고 과도하게 안전한 세계의 한구석'에 있는 것이 우리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되었다."

베트남 전쟁은 여러 면에서 미국에 큰 영향을 줬다. 저자는 이 전쟁으로 미국 군대가 어떤 변화를 겪었고 미국 정책에 어떤 변화가 이뤄졌는지부터 살핀다. 이어 '평화를 누리는 국가'를 '심각한 위험에 처한 국가'로 전락시킨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대선 전략으로 이용한 배경과 과정도 들춰낸다.

모두 9개 장으로 이뤄진 이 책의 마지막 장인 '핵무기에 핀 9조 달러짜리 곰팡이'에서도 저자의 신랄한 비판은 이어진다.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세계 최강자 미국의 졸속 관리를 보여주는 것. 저자는 이전에 만든 핵무기를 수리하지도 못하는 이유, 대참사를 일으킬 수 있는 미국 공군의 아찔한 핵무기 관리 등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면서 전쟁 결정에 대한 권한이 국민과 입법부 손을 떠나 표류하는 것에는 미국인들의 책임이 있다며 전쟁을 일상으로 만든 지난 40여 년의 경로는 수정돼야 마땅하다고 역설한다. CIA 드론 프로그램이나 용병 조직처럼 비밀리에 벌이는 군사 활동을 모두 근절하고, 위험천만한 화학 실험이 계속되는 핵무기도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전쟁에 관한 행정부의 비대한 권한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갈라파고스 펴냄. 박중서 옮김. 372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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