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장하나 활동가 "육아 문제는 결국 노동문제"
"돌봄 책임은 일차적으로 국가가 져야"
"당사자인 평범한 엄마들의 정치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은주 논설위원 = "임신, 출산을 이유로 여성들이 노동현장에서 차별을 받는다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육아 문제는 결국 노동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장하나 활동가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업이 사회공동체에 이로운 역할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정부가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장 활동가는 "우리 사회는 모든 돌봄의 책임을 가정에만 지우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돌봄 책임은 일차적으로 국가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육아, 보육, 교육, 경력단절 등 엄마들의 문제는 기득권층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다"라며 "당사자인 평범한 엄마들이 실제로 정치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NPO 지원센터에서 장 활동가를 만났다.
-- '정치하는 엄마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 2014년 임신해서 2015년 출산했다. 국회의원 임기 중이었다. 임신과 출산 기간에 겪은 많은 부조리함이 정치적인 문제임을 절감했다. 정치 활동, 시민사회 활동을 해왔지만, 엄마들의 문제를 다루는 단체나 당사자들의 운동조직은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없었다. 국회의원 한 사람이 해서 될 일이 아니고 엄마들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겨레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첫 칼럼이 2017년 3월 25일에 나갔다. 매번 칼럼 말미에 '우리가 만나야 한다. 우리를 대신해서 해줄 사람은 없다'라고 썼다. 2017년 4월 22일 첫 모임을 가졌다. 30여명이 모였는데 칼럼을 읽고 온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6월 11일 창립총회를 갖고 여기까지 왔다. 엄마가 되면서 겪은 문제들이 너무 다양하고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 당사자 정치의 필요성은.
▲ 2016년 기준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이 55세, 83%가 남성이며 평균 재산은 41억원이었다. 이들이 평범한 엄마들을 대변할 수 없다고 본다. 국회에서 대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엄마들뿐이겠나. 청년,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들도 마찬가지다. 의원들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이들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40억원 가진 남성이 비정규직 문제를 피부로 느끼겠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당에서 청년들에게 공천을 주어야 한다.
36세에 국회의원이 됐다. 민주당 청년비례대표 공모에 나섰다. 당시 제주도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고 있고, 문제가 많다는 것을 청년비례대표 공모에 응시한 청년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지원 이유였다. 의원이 되고 2개월도 안 돼서 당사자가 나서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의원들이 일부러 청년 문제 등을 해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기까지 마음이 닿지 않는 것이다. 국회는 고른 세대와 고른 계층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평범한 엄마들이 정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아이 키우면서, 유치원, 초중고교에 보내면서 문제를 아는 사람들이다. 이런 문제를 남한테 아무리 부탁해봐야 제대로 해결 못 한다.
-- '엄마들'의 의미는.
▲ '엄마들'이 꼭 아이를 낳은 엄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체 정관에 나와 있는 지향점, 설립목적에 동의하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실제로 비혼자,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회원도 많다. 우리 사회는 모든 육아, 돌봄의 책임을 가정, 특히 정상가정에 떠넘긴다. 돌봄 책임은 일차적으로 국가에 있다. 지금처럼 사회가 운영된다면 엄마가 문제가 생길 경우 아이가 너무 위태로워진다.
--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는가
▲ 작년 10월 사립 유치원 비리 사태가 터졌을 무렵 500여명이었던 회원 수가 3월 말 현재 1천800여명으로 늘어났다. 재정은 회비로 충당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공동대표 3인 체제였다. 이후 두 사람이 그만두고 혼자서 2년간 대표로 활동했다. 지난 2월에 새 공동대표가 오고 지금은 상근 활동가로 일한다. 계속 후임자가 나와야 단체가 성장한다.
다른 시민단체들처럼 성명도 발표하고 기자회견도 한다. 주로 소모임 별로 텔레그램을 통해 회의도 하고 정보공개청구 내용도 만든다. 회원들이 집에서 24시간 그 일을 나눠서 한다. 지역 모임이 있고, 주제별로 급식팀, 유보육팀, 미디어 감시팀, 법률팀, 환경보건팀 등 30여개 소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가끔 오프라인 모임도 갖는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원하는 만큼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우리 단체가 생긴 지 얼마 안 되고 상근 활동가도 두 명밖에 없지만 비교적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회원들이 협력해서이다. 토론이 살아 움직이는 조직을 만들려고 한다. 위계를 없애기 위해 남녀, 연령 상관없이 회원들끼리 '언니'라고 부르고 상호 존대를 한다. 직책으로 부르지 않는다. 강제는 아니고 일종의 문화이다. 이렇게 토론을 하니 다양하고 좋은 내용이 나온다.
-- 비리유치원 명단공개 행정소송을 냈다.
▲ 비리유치원의 이름을 알아야겠다고 해서 정보공개요청을 했는데 거절당해서 국무조정실과 인천교육청을 상대로 지난해 5월 행정소송을 냈다. 행정소송 하면서 언론에 제보하게 됐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정보공개청구 했던 것을 교육위원회 위원들을 통해서 국감 자료로 요청을 해서 받았고, 박용진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이다.
국무조정실은 처음에는 유치원 원장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명단을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가 재판부의 결론에 따라 명단을 주기로 했다. 이미 정부와 박용진 의원실, 교육부가 명단을 공개했지만, 우리 소송에서 의미 있는 부분은 현재 검찰 수사 중이고 재판 진행 중인 유치원의 명단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비위 사실이 너무 커서 교육청 감사로 끝내지 못하고 아예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한 경우들이 있다. 당연히 중대 비위다. 그런 것들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못 했다. 부모들에게 적어도 해당 유치원이 수사 중이라는 사실은 알려야 한다. 인천교육청에 대해서는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 육아, 보육, 교육, 경력단절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 모든 것이 결국은 노동문제와 닿아 있다. 기업들이 과연 사회적 책임을 지느냐가 문제이다. 기업들도 사회의 일원이니까 사회공동체에 이로운 역할들을 해야 한다. 임신해서 능률이 떨어진다고, 칼퇴근한다고 눈치 주는 식으로 기업 운영하면 안 된다. 임신, 출산을 이유로 일터에서 차별받는다면 정부는 해당 기업에 엄청난 페널티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고민하는 정부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출산율이 기록적으로 낮은 것이다. 게다가 취업난이 너무 심하다. 고도의 경쟁상황에서 임신, 출산 여성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나서야 할 상황이다. 민간기업 다니는 여성 2명 중 1명이 아이 낳고 5년 안에 일을 그만둔다.
-- 올해 주력 사업은.
▲ 계속해서 스쿨 미투, 유치원, 어린이집, 한국맥도날드 장 출혈성 대장균(O157) 오염 가능성 패티 사건 등을 해결해나가겠다.
스쿨 미투 관련해서 우리 법률팀 소속 변호사 5명 정도가 무료법률지원을 한다.
여성들 경력단절 부분이 중요한데 해결이 진짜 어렵다. 해결방안은 정부가 근로감독 해서 처벌하는 방법 딱 하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신혼부부에게 주거 혜택도 주고, 아동수당도 주는데 그보다는 여성들의 고용을 안정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는 핑크 노 모어(pink no more)라는 이름의 미디어 감시 캠페인이다. 영유아 콘텐츠에서 성 역할 고정관념이 너무 심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점차 개선하고 있는 분야인데 한국은 역행해서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예컨대 애니메이션 '뽀로로와 친구들'에는 루피라는 이름의 암 수달이 나온다. 7~8명의 등장인물 중 암컷은 둘이다. 이 중 예쁜 외모의 암컷은 요리를 못하는 캐릭터이고, 루피만 늘 친구들 밥을 해서 먹인다. 전형성이 심하다. 밥을 함께하면 안 되나. 성공한 한류 콘텐츠라고 정부가 칭찬만 할 게 아니다.
※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는 연세대 사회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 제주특별자치도 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민주당 제주도당 대변인을 거쳐 2012년에서 2016년까지 제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민주당 원내부대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원전대책특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6년에서 2018년까지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였고, 2015년 출생한 딸 두리의 엄마이다.
ke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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