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혁의 야구세상] 비디오판독 효과? '감독 vs 심판' 감정싸움이 사라졌다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초창기 프로야구는 툭하면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곤 했다.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감독이 뛰쳐나와 욕설하고 밀치는 등 험악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김진영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심판을 폭행했다가 검찰이 구속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그해 김응용 해태 타이거즈 감독도 심판을 폭행해 큰 논란이 일었다.
해태와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등에서 24년 동안 사령탑을 맡은 김응용 전 감독은 역대 최다인 6번 퇴장을 당했다.
사실 24년간 6번 퇴장이면 많은 편도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에서 팀을 이끈 바비 콕스 감독이 29년 동안 무려 161번이나 퇴장당했다.
연평균 5.6회꼴인데 열 번 이상 퇴장당한 시즌도 많았다.
메이저리그 초창기 대표적인 감독이었던 존 맥그로 감독은 31년 동안 131차례 퇴장당해 2위에 올랐다.
문제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감독의 퇴장을 바라보는 인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심판과 싸우고 퇴장당하는 감독을 경기의 '양념' 정도로 여기며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비교육적인 사회문제로 여겨 엄격하게 지탄받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예전 감독들이 심판들과 싸운 상황을 보면 규칙을 따지기보다 감정싸움이 주원인이다.
판정에 불만을 품은 감독은 더그아웃을 뛰쳐나오면서 욕설부터 했고 심판은 욕하지 마라, 반말하지 말라고 맞서다 몸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행태는 얼마 전까지 있었다.
그런데 2017년 이후에는 그라운드에서 감독과 심판의 감정싸움이 갑자기 사라졌다.
2017년은 KBO가 비디오판독을 도입한 첫해다.
물론 비디오판독 도입 이후에도 감독 퇴장 사례는 있다.
2017년 김진욱 kt 감독, 2018년에는 트레이 힐만 SK 감독, 김기태 KIA 감독, 조원우 롯데 감독, 김진욱 kt 감독 등 4명이 퇴장됐다.
올해는 지난 18일 양상문 롯데 감독이 1호 퇴장을 당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퇴장된 감독은 심판에게 욕설하거나 몸싸움을 벌인 게 아니라 모두 비디오판독에는 항의할 수 없다는 규정 위반으로 퇴장을 당했다.
KBO는 비디오판독을 도입하면서 '비디오판독은 최종적이며, 판독 이후 항의할 경우 퇴장된다'는 규정도 만들었다.
이런 사유로 2017년 이후 퇴장당한 감독은 단 한 명도 KBO 상벌위원회로부터 출전금지나 벌금 등 추가 징계를 받지 않았다.
2017년 이후 감독들은 비디오판독 결과가 아쉬워 심판에게 한 번 더 볼멘소리했지만 과격한 행동은 하지 않은 것이다.
김풍기 KBO 심판위원장은 "비디오판독 도입 이후 심판과 감독이 싸우는 일은 분명히 줄어들었다"며 "시스템으로 분쟁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젊은 감독들이 많아지면서 감독과 심판이 서로 존중하는 문화도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KBO는 2017년부터 심판들에게 경기장에서는 무조건 존댓말을 쓰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제 심판들은 고교를 졸업하고 막 입단한 선수에게도 존댓말을 한다.
매일 승부가 펼쳐지는 그라운드에서 심판과 감독, 선수가 흥분하는 일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항의하는 문화가 성숙해진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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