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엘시시 정권, 장기집권 개헌안 투표율 높이기에 안간힘

입력 2019-04-22 19:04
이집트 엘시시 정권, 장기집권 개헌안 투표율 높이기에 안간힘

"투표 참여자에 음식·돈 등 나눠줘"…젊은 층 투표율 저조할 듯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이집트 엘시시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한 헌법 개정안의 국민투표 참여율을 끌어올리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 일정으로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이 2030년까지 집권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 중이다.

투표가 후반부에 접어든 가운데 엘시시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유권자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등 투표율 높이기 작업을 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집트 매체 알아흐람은 22일(현지시간) 유권자들이 투표한 대가로 음식을 받은 사례가 여러 건 보고됐다고 전했다.

dpa통신 등 외신도 대통령 지지자들이 투표를 독려하려고 유권자들에게 기름, 쌀, 파스타를 비롯한 음식을 나눠줬다고 보도했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동부 빈민가에 사는 한 노인은 dpa에 투표 참여를 이유로 음식 꾸러미를 받았다며 "나는 읽거나 쓸 줄 모르는데 그들(엘시시 대통령 지지자들)이 (투표용지에) 표시하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일부 유권자들은 투표를 마친 뒤 돈을 받았다고 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카이로 인근 일부 국회의원들은 주민이 투표소까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교통편을 무료로 제공했다.



정부 고위인사들도 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무스타파 마드불리 총리는 투표 첫날인 20일 "나는 모든 이집트인이 국민투표에 긍정적으로 참여하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27일까지 국민투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며 개헌안은 국민투표에서 유효표의 과반 찬성만 얻으면 통과한다.

외신은 개헌안이 무난히 국민투표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투표율이 너무 낮게 나오면 개헌안이 통과되더라도 엘시시 대통령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작년 3월 엘시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을 때도 대선 득표율은 97%로 발표됐지만, 투표율은 41%에 그쳤다.

이번에도 엘시시 정권에 대한 불만이 투표율로 나타날 수 있다.

지난 1년 사이 지하철, 휘발유 등 서민 생활과 직결된 물가가 급등하면서 국민의 불만이 커졌다.

특히 이집트 젊은 층의 투표율이 낮을 것으로 보인다.

젊은이들은 엘시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거부감을 보이고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진 경우가 많다.

더구나 이번 개헌안은 엘시시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허용하고 '아랍의 봄'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카이로 시민 무함마드(28)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무바라크 시절이 차라리 지금보다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면서 "나는 투표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집트의 독재자였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2011년 거센 민주화 시위로 30년 장기집권을 마감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이었던 2013년 7월 첫 민선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를 축출했고 이듬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오른 뒤 이슬람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등 야권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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