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의 삶 4천464일' 13년 투쟁 끝 결실 본 콜텍 노동자들

입력 2019-04-22 16:50
수정 2019-04-22 20:28
'해고자의 삶 4천464일' 13년 투쟁 끝 결실 본 콜텍 노동자들

2007년 대거 정리해고…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직원들

해고무효 확인 소송 2심 이겼지만 '양승태 대법원'서 판결 뒤집혀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김철선 기자 = "4천464일. 해고는 삶을 파괴한다"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 설치된 투쟁 일자 현황판 문구다.

무려 13년째 이어지던 콜텍 노사 분쟁이 22일 극적인 교섭 잠정안 타결로 마침내 일단락됐다.

노조의 투쟁이 이토록 오랜 시간 이어진 것은 노사 양측의 갈등과 불신의 골이 워낙 깊었기 때문이다.

콜텍 노사 갈등의 뿌리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트는 기타를 만드는 악기 업체로, 인천에서 전자기타를 만드는 '콜트악기'와 대전에서 통기타를 만든 '콜텍' 등 2개의 공장을 두고 있었다.

두 공장에서 만든 기타는 세계 수준의 품질을 인정받았다.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인 펜더, 깁슨 등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품을 납품하기도 했다. 세계 기타 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콜트는 비용 증가를 이유로 국내 생산을 축소하고 인도네시아, 중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회사는 2007년 인천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3분의 1을 집단으로 정리해고했다. 같은 해 4월에는 대전 콜텍도 휴업하겠다며 공장을 폐쇄해버리고 노동자 89명을 내보냈다.

콜텍 공대위의 한 관계자는 "휴업 안내 같은 것도 없이 아침에 출근하니 공장 문 앞에 폐업 통지문만 붙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노동자들도 대응에 나서야 했다.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은 2008년 10월 14일 한강 망원지구의 송전탑에 올라 고공 단식 농성을 벌였다.

2008년 11월에는 노동자들이 본사를 점거했다가 경찰특공대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정리해고에 반발해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지르기까지 했다.

공대위 관계자는 "고공 농성, 단식, 사장 자택 앞 항의시위 등 안 해본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는 별다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싸움은 법정으로 이어졌다.

법원의 결론은 오히려 논란을 키웠다.

노동자들은 2008년 5월28일 해고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나 이듬해 1심에서 패했다.

노조는 곧바로 항소했고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11월27일, 회사의 2007년 정리해고가 무효라며 노조 손을 들어줬다. 회사가 정리해고를 단행할 만큼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2012년 대법원은 "회사에 경영상 긴박한 위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더라도, 장래에 닥칠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회사의 승리를 선언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직하던 시기였다.

이 판결은 파기 환송심과 재상고 기각 등을 거쳐 2014년 결국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작년 대법원의 '사법 농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정황'에 콜텍 사건을 포함시키면서 당시 법원 판결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커졌다.

그러는 와중에 2019년이 밝았다. 오랜 기간 투쟁을 거치면서 복직 투쟁에 참여하는 조합원 수는 25명으로 줄었다. 그나마도 실제 농성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이인근 지회장과 임재춘·김경봉 조합원 등 셋뿐인 상황이다.

복직 투쟁 중인 콜텍 노동자 가운데 최고령자인 김경봉 조합원은 올해 60세다. 회사가 김씨의 복직을 허용해도 올 연말이면 정년퇴직해야 하고, 내년이면 복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런 이유로 노조는 올해 '끝장 투쟁'을 선언했다. 전국 콜트 기타 대리점 앞 동시 다발 1인시위, 해외 뮤지션의 지지 선언 등으로 회사를 압박했다. 본사 점거농성과 40일을 넘긴 임재춘 조합원의 최후의 단식 투쟁 등으로 투쟁 수위를 높였다.

박영호 사장은 올해 3월 노조와 처음으로 정식 교섭에서 얼굴을 맞댔고 총 9차에 걸친 지난한 교섭 끝에 자신이 정리해고한 노조원을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4천464일에 걸친 투쟁이 마침내 빛을 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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