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크라 유럽화 노선 이미 정해져…친서방 노선 안바뀔것"

입력 2019-04-22 10:16
[인터뷰] "우크라 유럽화 노선 이미 정해져…친서방 노선 안바뀔것"

우크라 전문가들 대선 이후 전망…"조만간 EU·나토 가입은 어려워"

(키예프[우크라이나]=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유럽화 노선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친서방 노선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대표적 정치·사회 문제 연구 싱크탱크인 '고르쉐닌 연구소' 제1부소장 빅토르 소콜로프와 부소장 알렉세이 레셴코는 우크라이나 대선 1차 투표 이후인 이달 초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젤렌스키가 집권한 후 우크라이나의 대외 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미 오래전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목표로 하는 유럽화 노선을 선택했기 때문에 옛 소련권으로의 복귀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정치 신인 젤렌스키 후보의 승리를 평가한다면.

▲ (소콜로프) 우리가 1차 투표 전 유권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을 때 '대선 후보 중 누가 연금과 월급을 잘 줄 수 있다고 보나', '누가 훌륭한 경제전문가라고 보나' 등의 질문에 다수가 (1차 투표에서 3위에 머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를 꼽았다. 젤렌스키 선택은 비이성적이며,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 감성이 이성에 승리한 것이다.

또한 젤렌스키 선택은 다른 나라 선거에서도 나타난 전 세계적 경향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제도권·기성 정치 엘리트 등에 대한 반대 여론이 그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정치 엘리트가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뽑은 것도 그렇고, 지난해 이탈리아 총선에서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이 약진한 것도 같은 예다. 이번 우크라이나 대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유권자들이 포로셴코 대통령, 티모셴코 전 총리 등의 기성 정치인들에 반대해 표를 던진 것이다.

사람들은 아직 젤렌스키가 누군지, 그가 어떤 대통령이 될지,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의 측근들이 누군지 잘 모른다. '자루 속에 든 고양이'(실체가 불확실한 대상)를 선택한 셈이다.

(레셴코) 우크라이나에선 역사적으로 모든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해 왔다. 유일한 예외라면 레오니트 쿠치마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던 1999년 대선 때밖에 없다. 이 대선을 제외한 모든 대선과 총선에선 항상 집권 세력이 선거에서 패배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이 지난 5년 동안 추진한 개혁이 일부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모든 성과가 광범위한 부패 문제로 묻혀 버렸다.

-- 젤렌스키 집권 후 어떤 변화가 있을까.

▲(레셴코) 젤렌스키는 아직 백지다. 그가 어떤 정치 구도를 만들지, 어떤 대내외 정책을 펼지, 누가 그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미칠지 모든 것이 미지수다. 지지자들은 그에게 대통령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들을 써넣고 있다. 이 문제에선 금융재벌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의 영향력이 유지될지가 큰 변수다. 선거 운동 기간에는 젤렌스키에 대한 콜로모이스키의 영향력이 아주 컸다.



-- 젤렌스키가 고질적 병폐인 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소콜로프) 젤렌스키의 선거 운동은 주로 반부패 문제에 집중했었다. 그가 주인공 역을 맡은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도 반부패 문제가 주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행동과 그런 행동을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레셴코) 기존 시스템에 속했던 사람들이 부패를 척결하기는 힘들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포로셴코 대통령도 개혁자임을 자처했지만 결국 예전 시스템의 일부였다. 그가 시도한 개혁 방식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기존 시스템에 속하지 않은 젤렌스키가 부패와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 우크라이나의 대외 정책은 어떻게 바뀔까.

▲(소콜로프) 아직 분명치 않다. 젤렌스키가 러시아를 향해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모든 것을 해결해보자'는 식으로 말하지만,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그가 러시아, 미국, 유럽 등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복잡한 사안들에서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많은 것이 누가 외무장관이 되고 누가 러시아와 협상할지 등에 달렸겠지만 젤렌스키가 약한 협상가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의 EU, 나토 가입 추진 등 친서방 정책과 관련, 젤렌스키가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한편으로 옳은 얘기지만 다른 한편으론 보다 친러시아적 생각이다. 현재 나토 가입 찬반 여부 국민투표를 실시하면 50% 내외가 지지한다. 친러 세력이 나토 가입 반대 운동을 펼치면 지지율이 48%나 49%가 될 수도 있다.

(레셴코) 대다수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유럽화 노선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60% 정도가 EU 가입을 지지하고 10% 정도만이 옛 소련권과의 관세동맹을 지지한다. 나토 가입에 대해선 변수가 있지만 역시 현재 나토 가입 지지율이 가장 높은 상태다.

하지만 대선 기간 후보들의 공약에서 이 문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몇 년 전에는 이 문제가 우선순위에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 국민들에게 이 문제는 이미 정해진 것임을 의미한다. 어떤 대통령이 되더라도 친서방 노선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사람들에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세금 문제, 동부 지역 내전, 가스 가격, 연금, 월급 같은 것들이다. 이것이 대통령의 주요 과제다.

-- 그러면 언제쯤 우크라이나가 EU와 나토에 가입할 수 있을까.

▲(소콜로프) 나토 가입은 현재로선 상당히 어렵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다른 나라(러시아와)와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나토 규정상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는 회원국이 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분쟁을 야기함으로써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사실상 가로막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미 조용히 나토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군대를 나토 기준으로 바꾸고 있다. 예전에는 '소련군'이었다면 지금은 나토 기준에 가깝다. 우크라이나 군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고 현대화할 것이다. 이것이 우크라이나가 가야 할 길이다. 나토의 회원국이 되지 않고서도 파트너 국가 등으로 나토 구조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친러 세력의 '공작'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나토 가입 국민투표를 실시할 경우 50% 이상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EU 가입은 좀 다르다.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무비자 협정 덕에 유럽을 방문하면서 선진국을 느끼고 있다. EU 국가들에서 일하는 우크라이나인들도 많다. 따라서 EU 가입은 많은 사람이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EU가 당장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EU가 러시아와 심각한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를 당장 받아들이겠는가?

(레셴코) 나토 가입은 우크라이나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러시아가 분명히 갈등을 증폭시키고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동원해 갈등을 키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 크림과 돈바스 지역 분리주의 반군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까.

▲(소콜로프) 크림과 돈바스 문제는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은 크림 문제가 향후 수십 년 내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한다. 러시아는 크림을 아주 강력하게 자국으로 끌어들였고 그곳을 군사 기지로 변모시켰다. 그곳에는 러시아 흑해함대만 주둔하고 있는 게 아니다. S-400 첨단방공미사일이 배치됐고 핵무기를 싣는 전략폭격기가 배치됐다는 얘기도 있다. 러시아는 절대 이 군사 기지를 우크라이나에 반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돈바스의 경우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러시아에 유리하다. 러시아는 돈바스를 병합하지 않을 것이다. 돈바스는 현재 많이 파괴됐고 공장들은 멈췄고 경제 상황은 아주 안 좋다. 러시아가 이 지역을 병합할 경우 크림반도나 체첸 등의 지역에 쏟는 것보다 훨씬 많은 지출을 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는 이 같은 경제적 부담을 우크라이나에 떠넘기려 한다. '돈바스 주민들은 당신들의 국민이니 당신들이 그들에게 연금을 줘야 한다'는 식이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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