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말싸움 이어가며 '제자리걸음'…韓, 중재 기회 만들어낼까
北, '하노이 노딜' 배후 폼페이오·볼턴 저격…美, 빅딜론 고수
북러정상회담 앞둬 당분간 南개입 여지도 작아…韓美, 대 러시아 외교 강화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한미정상회담과 북러정상회담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 정상외교가 2주 간격을 두고 열리면서 정세가 급박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정작 비핵화 협상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은 연일 말싸움을 이어가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북미 양측 모두 제3차 정상회담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하면서도, 서로 상대가 먼저 양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모양새라 대화 재개의 기미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20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지난 18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각각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향한 비난을 쏟아냈다.
북한이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 확대회담에 배석한 미국 측 고위인사를 지명해 저격한 것으로 미뤄봤을 때, 여기에는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장관을 하노이 합의 무산의 원인으로 보는 북한의 입장이 담겨있다.
최 제1부상은 지난달 15일 평양에서 한 브리핑에서도 제재를 해제하되 위반행위가 있으면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snapback)'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긍정적이었는데,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이 "기존의 적대감과 불신의 감정으로 두 수뇌(정상)분 사이의 협상 노력에 장애를 조성했다"며 회담 결렬의 귀책 사유를 두 사람에게서 찾았다.
기자와의 질의응답이라는 형식을 빌려 마치 최선희 제1부상과 권정근 국장의 개인적인 의견인 것처럼 수위를 낮추긴 했지만, 결국 미국의 유연한 태도를 압박하고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최 제1부상이 볼턴 보좌관 비난에 나선 표면적인 이유는 그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징후(real indication)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 때문이었다.
볼턴 보좌관의 이러한 발언은 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려면 북한이 뚜렷한 비핵화 징후를 보여야 한다는 선결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 졌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4·11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밝힌 '단계를 거쳐(step by step)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겠다'는 발언과도 궤를 같이한다.
최 제1부상과 볼턴 보좌관이 맨 앞줄에 서서 마치 탁구라도 하듯 공을 주고받으며 기 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북미 양측 모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는 신뢰가 구축돼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대화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2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2일차 회의에서 한 시정연설에서 "나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으며 우리는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생각나면 아무 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여기에 호응이라도 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 15일·태양절)을 맞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볼턴 보좌관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미 PBS방송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메시지를 보낸 시점과 방식은 밝히지 않았으나, 김정은 위원장에게 유화의 손길을 내민 것으로 풀이됐다.
미국은 일괄타결을 바라는 '빅딜'에서,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와 이에 따른 상응 조치를 요구하는 '스몰 딜'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지만, 북미 양측이 비핵화 협상에서 '톱다운' 방식을 버리지 않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비핵화와 이에 대한 상응 조치를 바라보는 북미 양측의 간극이 큰 만큼 한국 정부가 다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21일 "북미 사이에서 명분 싸움이 너무 치열하다 보니 미국도 문재인 대통령이 중간에서 역할을 해달라고 하는, 기대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미국을 만나거나 북한을 만날 기회에 중간에 어떤 아이디어를 가져가서 이야기하는 역할을 계속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하노이 '노 딜' 이후 새로운 회담으로 가기 전 북미가 기 싸움을 하면서 서로 공이 상대방 코트에 넘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한국이 인위적으로라도 틈을 만들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4·11 한미정상회담 이후 제4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북한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달 말 북러정상회담을 앞둔 점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남북 정상 간 회동은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는 지난 18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개최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제4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진전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이날 회의에서 특사 파견을 포함한 다양한 대북접촉 방안이 논의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북한과 접촉을 시도하는 한편, 북러정상회담을 앞두고 러시아 측에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하는 등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 외교부 1차관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티토프 러시아 외교부 제1차관과 제7차 한-러시아 전략대화를 하고,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18일 모스크바에서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교부 차관을 만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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