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400년전 고구려 사신 묘사한 아프라시아브 벽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서 1965년 발굴조사 도중 발견
문화재청, 내후년까지 박물관 전시 환경 개선 지원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우즈베키스탄 남동부에 위치한 고도(古都) 사마르칸트에서 1965년 도로 개설을 위한 발굴조사 도중 발견된 아프라시아브(아프라시압) 궁전벽화는 고구려 사신으로 추정되는 인물 2명이 있어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
궁전벽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현지시간) 방문한 아프라시아브 박물관에 전시됐다. 박물관에는 아프라시아브 언덕에서 출토한 고대 칼과 은제 동전, 꽃병,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있다.
아프라시아브는 중국에서 '강국'(康國)이라고 표현한 나라 '소그디아나' 수도였다. 19세기 후반 시작된 발굴을 통해 4중 성벽에 둘러싸인 고대도시 내부에 궁전, 사원, 주거지, 목욕탕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프라시아브 궁전벽화는 바르후만 왕 재위 시절인 7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변 길이가 11m인 정사각형 공간에 그림을 그렸는데, 발굴 당시 이미 상부와 천장은 무너진 상태였다.
벽화에는 바르후만 왕이 각국 사신을 접견하는 장면과 사냥, 활쏘기, 뱃놀이 모습이 묘사됐다. 다만 서쪽 중앙에 있었다고 짐작되는 바르후만 왕은 보이지 않는다.
고구려 사신 추정 인물 2명은 서쪽 벽 오른쪽 끝에 있다. 새 깃털을 꽂아 만든 조우관(鳥羽冠)을 머리에 쓰고 고리 손잡이가 달린 칼인 환두대도(環頭大刀)를 허리에 찼다.
6세기 중국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인 사절을 그린 '양직공도'(梁職貢圖)를 보면 고구려 사신은 조우관을 썼으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조우관을 착용한 인물이 확인된다.
정호섭 한성대 교수는 지난 17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사마르칸트에서 개최한 학술회의에서 "중국과 한국의 많은 문헌에는 대체로 조우관이 고구려의 전형적인 모자로 기록됐다"며 "타자의 시선으로 보면 조우관은 하나의 외모 특징으로 인지됐고, 고구려 사람의 이미지로 굳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아프라시아브 속 고대 한국인이 고구려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지만, 실제로 고구려인이 아프라시아브를 갔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상업으로 번성한 소그디아나에 고구려가 실제로 사신을 보냈다는 견해가 있으나, 고구려 수도 평양성에서 소그디아나까지 수천㎞ 떨어진 데다 7세기 중반에 고구려가 당과 전쟁 중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다고 판단하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해 정 교수는 학술회의에서 "중국에서 유행한 고구려인 도상이 아프라시아브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소그드인이 고구려인을 직접 만난 것이 아니라 동쪽에 멀리 떨어진 나라를 관념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성제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장도 "고구려 사절이 사마르칸트에 간 것이 아니라 고구려인에 대한 이미지 혹은 도상을 그렸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소그드인이 벽화에 고구려인을 그린 과정과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벽화가 1천400년 전 고대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교류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임은 틀림없다.
이에 동북아역사재단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벽화를 디지털로 모사한 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하고, 아프라시아브 박물관 안에 영상실을 만들어 운영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18일 우즈베키스탄 문화부와 문화유산 공적개발사업(ODA)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2021년까지 아프라시아브 박물관에 있는 궁전벽화 전시실과 상설전시실 관람 환경 개선 작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아프라시아브 박물관에서 고구려 사신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니 시공을 뛰어넘는 전율을 느낀다"며 "ODA 사업으로 전시 환경을 개선하면 신실크로드 시대에 세계적 명소로 거듭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문화유산을 통한 연대로 두 나라의 형제애가 더 깊어지고 고려인 18만명의 긍지가 높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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