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연설 이후 달라진 北, 美 대북 협상 키맨 연일 비판

입력 2019-04-20 19:08
시정연설 이후 달라진 北, 美 대북 협상 키맨 연일 비판

제재 목매지 않는다며 '자력갱생' 천명 연장선 발언…"비판 수위는 조절"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한동안 미국 당국자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자제하던 북한이 최근 미국의 대북 협상 핵심인물들을 연일 비판하며 날을 세우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 주도의 제재 장기전에 맞서 '자력갱생' 노선을 천명한 이후 북미 대화의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선은 지키면서도 심기를 거스르는 미국의 발언에는 강경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20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 대해 "매력이 없이 들리고 멍청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진정한 징후'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볼턴 보좌관의 발언은 김 위원장이 지난 12일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보이면 올해 안에 정상회담을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며 '새로운 안'을 갖고 나오라고 조건을 제시한 지 일주일도 안 돼 나왔다.

최 제1부상은 볼턴을 향해 "두 수뇌분 사이에 제3차 수뇌회담과 관련해 어떤 취지의 대화가 오가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말을 해도 해야 할 것"이라며 "계속 그런 식으로 사리 분별없이 말하면 당신네 한테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 제1부상의 발언 이틀 전에는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향해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여 사람들의 조소를 자아내고 있다"며 차기 북미협상에는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동안 북한은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 당국자의 발언에 이 정도로 일일이 반발하며 대응하지는 않았다.

특히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선희 등 외무성 당국자들이 볼턴 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리비아 모델' 발언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전격 취소하자 8시간 여만에 공손한 태도로 대화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근본이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티끌만 한 양보나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미 협상 원칙을 표명한 뒤로 북한의 태도가 달라진 게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해 보인다.

제재 완화에 목을 매 미국의 '일괄타결' 요구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발전을 '포스트 하노이' 대미정책과 국정방향으로 정하고 그 원칙에서 대응한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은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장관에 대한 비판을 당국의 공식 성명이나 담화가 아닌 당국자와 중앙통신 기자 간 문답 형태로 수위를 조절했다.

또 미국의 외교·안보 라인을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 대한 공격은 일절 삼가고 있다. 오히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언급했다.

결국 미국에 연말까지 시한을 제시한 만큼 대화를 지속할 의지가 있지만, 제재 해제를 위해 미국의 눈치를 살피거나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미국이 압박하면 북한도 대응할 수밖에 없지만, 너무 세게 나가면 북미 간 신뢰에 손상을 줄 수 있어 대화의 끈은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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