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핵포기 징후 필요" vs 北"장애물 치워"…'먼저 양보' 기싸움

입력 2019-04-18 17:50
수정 2019-04-19 10:57
美"핵포기 징후 필요" vs 北"장애물 치워"…'먼저 양보' 기싸움

사실상 3차회담 조건으로 내걸어…대화 재개에 시간 걸릴 듯

北 '김정은 독재자' 발언 폼페이오 겨냥해 비난도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정성조 기자 =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냉각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이 "핵포기 징후가 필요하다"며 북한을 압박하자, 북한은 "미국이 장애물을 치워야 한다"며 반박하는 등 기싸움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 사실상 3차 정상회담의 조건을 내걸면서 '상대가 먼저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형국으로, 대화 재개를 위한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아 보인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 전에 북한으로부터 무엇을 보기 원하느냐는 질문에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징후"라고 답했다.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위해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포기 의사가 먼저 확인돼야 한다는 뜻으로,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사실상의 조건을 내걸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진정한 징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미국이 하노이 회담 당시 요구했던 ▲비핵화 정의에 대한 합의 ▲모든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 ▲로드맵 도출 등에 북측이 합의할 준비가 됐다는 점이 실무회담 등을 통해 확인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도 가만있지 않았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18일 보도된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미국이 먼저 입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밝힌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을 상기하며 "그 뜻인즉 미국은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떠민 근원, 비핵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 손으로 올해 말까지 치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그간 핵 개발의 이유로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문제 삼아 왔으며, 제재해제로 적대시 정책이 철회됐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해 왔다.

외교 소식통은 "비핵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우라는 요구는 제재해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제재해제에 목매지 않겠다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요구사항이 안전보장 등으로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도 지난 14일 '군사분야 조치' 등을 거론하며 "조선(북한)이 제재해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른 행동조치로 저들의 적대시정책 철회 의지와 관계개선 의지, 비핵화 의지를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우리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미국 쪽이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라며 "정상회담을 한 번 더 한다는 것을 잘못 받아들이지 마라, 연말까지 한다는 게 미국 말을 듣는다는 뜻은 아니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비난의 타깃으로 삼은 점도 주목된다.

권정근 국장은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가 재개되는 경우에도 나는 폼페이오가 아닌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우리의 대화상대로 나서기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하노이 수뇌회담의 교훈에 비추어보아도 일이 될 만하다가도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나군 한다"는 게 그 이유다.

폼페이오 장관은 하노이 정상회담 당시 대북 초강경파인 볼턴 보좌관 못지않게 제재완화 문제 등에 있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9일(현지시간) 상원에 출석한 자리에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썼던 '독재자(tyrant)'라는 표현을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쓰겠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라고 답변한 것도 북한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권 국장은 이날 이 발언을 두고 "(폼페이오 장관이) 우리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망발을 줴쳤다"고 비난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반드시 폼페이오 장관을 교체하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미국의 반응을 보려는 전략"이라며 "기싸움의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transi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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