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ILO협약 비준하려면 입법·공감 필요"…'先 비준' 거부(종합)
"시간 걸리더라도 안전한 방법으로"…민주노총 "직무유기" 반발
(세종=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정부가 노동자 단결권 강화를 위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라는 이른바 '선(先) 비준 후(後) 입법' 요구에 대해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김대환 고용노동부 국제정책관(국장)은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현재 정부 입장은 (ILO 핵심협약에 규정된) 결사의 자유에 관한 주요 쟁점은 이해가 상충하는 사안으로 입법이 필요하고 입법을 위해서는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국장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한 노사정 논의를 계속할 계획이고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 추경호 의원 등의 발의 법안이 있어 관련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 입장에서는 노사정과 국회 논의를 지켜보면서 비준 방식에서 어떤 것을 취할지 제반 상황을 검토한 뒤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 기준에 맞게 국내 노동관계법을 개정하고 나서 협약을 비준한다는 '선 입법 후 비준'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에서 법 개정을 위한 노사정 논의가 난항을 겪자 노동계를 중심으로 ILO 핵심협약부터 비준하자는 '선 비준 후 입법'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도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ILO 핵심협약을) 먼저 비준하고 국내법을 정비해도 된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헌법상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서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대환 국장은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에게 조약(협약) 비준권이 있으나 예외적으로 국내법과 상충해 법 개정이 필요한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에 대해서는 국회가 동의권을 갖는다"고 밝혔다.
이어 "이 경우 국회 동의는 대통령이 조약을 비준하기 전에 이뤄져야 한다"며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경우 대통령 재가만으로 비준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ILO가 국내 노조법 등이 핵심협약에 위배된다고 여러 차례 지적한 점을 거론하고 "결사의 자유 협약은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이므로 대통령이 비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이 협약과 상충하는 법 개정 내지 국회의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계도 ILO 핵심협약 비준에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정부가 더는 노사정 합의를 기다리지 말고 서둘러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라는 게 노동계의 요구다.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1년 안으로 국내법을 개정하면 되는 것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김 국장은 경사노위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논의를 더 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헌법에 따른 조약 비준 절차를 고려할 때 가능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한 방법으로 가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노사정 논의를 지켜보면서 좋은 결과를 내도록 정부의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비준 동의안 제출에 나서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김 국장의 브리핑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더 책임을 떠넘기거나 핑계를 찾지 말고 지금 당장 국무회의를 거쳐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송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ILO 핵심협약 비준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점을 거론하고 "고용노동부는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인 지금까지도 ILO 핵심협약 비준안조차 마련하지 않았다는 게 오늘 발표로 확인됐다"며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시민과 국제사회에 대한 기만"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ILO 핵심협약과 상충하는 모든 법령을 개정하고 비준하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사실상 비준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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