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에게 묻다] 허풍·거짓이 만들어내는 병 '뮌하우젠증후군'

입력 2019-04-17 07:00
[명의에게 묻다] 허풍·거짓이 만들어내는 병 '뮌하우젠증후군'

수십차례 수술에도 만족 못하고 지속해서 통증 호소하기도

주변 관심 중요하지만 환자의 증상 호소에 말려들지 말아야

(서울=연합뉴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길원 기자 = #. 가정주부 A(54.여)씨는 어깨와 손목, 무릎 관절의 통증으로 지금까지 정형외과에서 13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수술 결과에 만족스러워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수술을 하고 나면 매번 다른 방식의 추가 수술을 요구하기 일쑤였다. 더욱이 그녀는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 결과보다 더 심한 관절 통증을 반복적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자신의 증상을 과장해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의료진은 이런 A씨가 전형적인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 syndrome) 환자로 보인다는 내용의 논문을 관련 학회지에 발표했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동화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실제 주인공인 폰 뮌하우젠(Baron Karl Friedrich Munchausen) 남작 이름에서 따온 질환이다. 뮌하우젠 남작은 18세기 독일의 군인이자 관료였는데,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가짜를 사실처럼 과장하거나 믿음이 가지 않는 말과 행동을 꾸며대는 허풍쟁이였다.

예를 들면 뮌하우젠 남작이 한겨울에 러시아 여행을 하던 중 눈으로 뒤덮인 곳을 달리다 삐죽 솟아 나온 쇠붙이에 말고삐를 묶어두었는데 잠에서 깨어 보니 눈이 녹아 말이 교회 첨탑 꼭대기에 매달려 있었다는 식이다.

이런 동화 속 주인공을 빗대 뮌하우젠 증후군을 처음으로 보고한 건 미국의 정신과 의사 리처드 애셔다. 그는 1951년 의학저널 랜싯(The Lancet)에서 끊임없는 허풍과 과장, 거짓으로 자기 경험을 주장하는 정신질환자의 증세가 뮌하우젠 남작과 비슷하다면서 그의 이름을 따 병명으로 만들었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그 특징 때문에 인위성 또는 허위성 장애라고도 한다. 타인의 사랑과 관심,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자신의 상황을 과장하고 부풀려서 얘기하는 허언증(虛言症)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 질환은 심리적인 징후와 증상이 있는 것, 신체적인 징후와 증상이 있는 것, 이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것 등 3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도 주로 신체적인 징후와 증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경우를 뮌하우젠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런 환자들은 A씨처럼 통증이 없으면서 아프다고 거짓으로 꾸미거나 자기 상해를 만들고 과거 병력을 과장해 악화했다고 호소한다. 이런 행동의 동기는 스스로 환자의 역할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행동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얻거나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고 신체적으로 편안함을 얻으려는 '꾀병'과는 구별된다.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는 어려서 부모가 없거나 부모로부터 배척을 당했던 과거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 또 과거 심한 병이나 박탈을 경험했을 때 누군가, 특히 의사, 간호사로부터 사랑과 돌봄을 받아 회복했던 경험이 있다. 이를 통해 과거에 원했던 부모-자식 간 관계를 재구성하고, 계속해서 다른 의사들과도 비슷한 관계를 가지려는 강박 성향을 보인다.

고통을 주는 검사나 수술을 원하는 건 환자의 피학적인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환자는 그 고통을 과거에 실제 일었던 일이나 상상으로 만든 죄에 대한 징벌로 생각한다. 반복적인 환자 역할로 입원과 수술 같은 고통을 감수함으로써 고통의 경험들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뮌하우젠 증후군의 증상으로는 심리적인 우울감과 기억상실, 환각, 전환장애(운동기능이나 감각기능의 결함 또는 이에 따른 신체증상) 등이 대표적이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묻는 증상에 모두 '있다'라고 답변하는 성향도 있다.

신체적으로는 구토와 복통, 각혈에서부터 전신 발진과 농양, 발열, 항응고제 복용 후 출혈 증상이 보고돼 있는데, 대부분 증상은 개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상상의 범위 내에서 나타난다.

현재 뮌하우젠 증후군을 진단할 수 있는 실험실 검사는 없다. 진단기준에 따른 정신과적 면담과 임상 심리검사를 통해 정신과 전문의가 임상적으로 판단한다.

이 경우 신체적 질환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진단하는 게 필요하지만, 실제 신체 질환이 있더라도 초기에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초기박탈, 어린 시절 학대, 정신 질환 등의 과거력과 진료 기록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환자가 위험한 상태에 이르게 됐을 때는 즉시 정신과에서 입원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경과와 합병증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 보통 일회성이나 몇 번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환자는 만성적인 경과를 보인다. 이때는 반복적인 입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어린 시절보다 성인 때 발병하면 예후가 더 좋지 않아 지속해서 환자 역할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질환의 치료 과정에서 가족과 주변 사람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이 병의 특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환자의 증상 호소에 말려들지 말고,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 지속해서 지지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때론 환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행동들이 오히려 환자의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꼭 유념해야 한다.



◇ 권준수 교수는 정신질환 중 강박증과 정신분열병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다. 1998년부터 '강박증 클리닉'과 '정신분열병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매해 수천명의 강박증, 정신분열병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1999년 감마파의 이상으로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조현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 등 지금까지 SCI급 학술지에 3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조현병과 강박증을 진단할 수 있는 생물학적 지표를 개발하는 성과도 거뒀다. 현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을 맡아 정신건강복지법(일명 임세원법) 제정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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