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미·일 무역협상 시작…입장차 커 난항 예상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미국과 일본이 새로운 무역협정을 도출하기 위한 협상을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본격 시작한다.
미국은 무역대표부(USTR)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일본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경제재생상이 협상을 이끈다.
무역적자 감축을 공약으로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번 첫 협상에서 미국이 제시할 요구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첫 협상은 일단 교섭 범위와 대상을 정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지는 후속 협상에선 미국이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고 일본은 최대한 방어선을 치는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은 오는 26~27일 예정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미국 방문과 오는 5월과 6월 잇따라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을 거치면서 협상 내용이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달 하순 새 일왕 즉위 후 첫 일본 국빈으로 방일한 뒤 한 달 만인 6월 28~29일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아베 총리와 회동할 예정이다.
◇ 협상 배경은…무역역조에 대한 트럼프의 '불만'
미·일 양국이 새로 시작하는 무역협상은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당시 두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무역 역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관세 분야인 물품무역과 '조기에 결론을 얻을 수 있는 서비스 분야'에서 새 협정을 맺기로 했다.
미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작년 기준으로 676억 달러(약 76조원) 규모의 적자를 봤다. 중국, 멕시코, 독일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다.
일본은 자국 기업이 미국 각지에 공장을 만들어 고용을 창출해 미국 경제에 기여해 왔다는 점을 내세워 무역수지만을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은 좀 더 공장을 미국으로 옮겨야 한다. 일본과의 교역에서 미국이 보는 적자는 너무 크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이 대미 수출을 줄이고 미국 내 생산을 늘리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일본산 자동차가 무역역조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고 있어 일본 자동차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 교섭 범위 놓고 뚜렷한 시각차
일본은 미국과 체결할 새로운 무역협정을 작년 9월 양국 정상 간 합의한 공동성명을 근거로 '물품무역협정(TAG)'으로 부르며 물품의 관세 문제가 협상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 측은 포괄적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기 위한 교섭이라고 협상 범위를 넓게 잡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일본과 진행할 새로운 무역협상의 목적을 의회에 통지하면서 협상의 결과로 체결할 협정 명칭을 '미·일 무역협정'(US·Japan Trade Agreement)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면서 협상 항목을 물품 관세 외에 정보통신·금융을 포함한 서비스 무역, 투자, 지적재산, 의약품·의료기기, 환율 등 22개 항목에 걸친 분야를 언급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번 협상에 앞서 물품무역협정(TAG) 체결을 위한 교섭으로 거듭 규정하는 등 미국과 뚜렷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다만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해 협상 대상에 상품 무역뿐만 아니라 세관 절차 간소화 등에 한정된 일부 서비스 분야를 포함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미국 측이 폭넓은 요구안을 내놓을 경우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3대 관전 포인트 '車·농산물·환율'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번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중시하는 분야 중 하나가 자동차다.
미국이 일본과의 교역에서 보는 무역적자 중 약 80%를 차지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자국 고용을 늘리려는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자동차 업체들에 일본 내 생산을 줄이고 미국 공장에서 더 많은 차를 만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고율 관세 부과 외에 일본산 수입 차량 대수에 상한을 두는 규제까지 불사하겠다는 움직임이 있다고 일본 언론은 전하고 있다.
농산물도 민감한 분야 중 하나다.
일본은 미국이 자발적으로 빠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작년 말 발효한 데 이어 유럽연합(EU)과의 경제연대협정(EPA)을 올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들 협정에 따라 미국의 경쟁국인 호주, 캐나다, 유럽 국가에서 일본으로 들어오는 쇠고기, 돼지고기, 치즈 등 유제품의 관세가 낮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농업 단체들은 일본 시장 등에서 미국 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면서 일본과의 관세인하 협상을 조기에 타결하라고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농산물 분야에서 TPP나 EPA 수준 이상의 관세 인하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TPP나 EPA 수준의 혜택을 미국에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 문제는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일본이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엔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환율조작을 한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과의 무역협정에 인위적인 엔저를 막을 '환율조항'을 삽입할 것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서 기자들에게 "수출 경쟁력을 높일 목적으로 환율을 조작해선 안 된다"며 "어떤 무역협정에도 환율조항을 넣고 싶다"고 밝혔다.
므누신 장관이 일본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본과의 무역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나온 발언이라 중국 등 외에 일본을 함께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와 관련, NHK는 므누신 장관이 일본이 의도적으로 엔화 약세를 유도하는 것을 막는 환율조항을 무역협정에 넣는 것에 대해 재차 의욕을 드러냈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일본은 미국이 자동차 수출 대수 규제와 엔고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환율조항 등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안을 들고나올 경우 거부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는 입장이어서 협상 시작 단계부터 치열한 신경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편 미국은 일본이 비시장 경제국과 자유무역협정 교섭을 하는 경우 투명성을 확보해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가 중국과 체결을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에 걸림돌이 되는 조항이라며 미국의 이런 요구가 한·중·일 FTA와 16개국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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