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5년 전 참사 간직한 세월호…처참한 내부
침몰 방지하는 지하 수밀문 활짝 열려 있어
선체 가장 높은 곳 조타실은 조사 덜 끝나 비공개
(목포=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여기가 세월호의 화물칸입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사흘 앞둔 13일 전남 목포시 달동 목포신항에 참사 당시의 처참한 모습으로 서 있는 세월호를 찾았다.
2017년 선체가 인양되고도 1년 넘게 누워있었던 세월호는 바닥과 맞닿은 좌현 대부분이 진갈색의 녹 덩어리로 변해있었다.
그나마 세월호가 직립한 뒤 바람에 마른 녹가루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일부분은 희미하게 다시 본래의 색을 찾고 있었다.
선체 후미에 세워진 녹색 워킹타워를 통해 참사 당시 자동차 등이 실려있던 화물칸에 올랐다.
인양 과정에서 잘려나간 램프(차량 출입통로)를 통해 들어선 화물칸은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어둡지 않았다.
오랜 시간 바다에 잠들어있던 탓에 벽면과 바닥 곳곳은 녹이 슬었고, 일부엔 해조류와 조개껍데기가 붙어있기도 했다.
화물칸에 실려있던 자동차들은 미수습자 수색 과정에서 인근 석탄 부두 등으로 옮겨져 지금의 화물칸은 텅 빈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고박을 위해 데크 바닥에 달린 쇠고리만이 이곳이 화물칸임을 나타내주었다.
화물칸 앞부분에서 눈에 띈 건 천장에 달린 쇠사슬이었다.
당초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확인할 순 없지만, 참사 당시 이 쇠사슬을 비추던 차량 블랙박스를 분석해 시시각각 기울어지던 세월호의 침몰 모습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었다.
세월호 내부를 조사한 선체조사위원회가 당시의 선체 기울기를 재검증하기 위해 쇠사슬에 묶어놓은 무게 추도 그대로였다.
화물칸 뒤쪽에는 '화기엄금'이라는 표지판이 붙은 탱크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운항 중 화재에 대비해 일산화탄소가 들어있던 수십 개의 탱크는 무수한 관으로 연결돼 천장을 통해 각 선실로 이어져 있었다.
취재진과 동행한 세월호 유가족 정성욱씨는 "수색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 누구도 탱크에 일산화탄소가 남아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며 "부식된 탱크가 터졌을 경우 질식사 등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선체 내부를 이동하는 경로 곳곳에 쓰여있던 일본식 한자어는 세월호가 1994년 6월 일본에서 건조돼 국내로 매각된 뒤 불법 증축됐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간 3층 중앙홀 한쪽엔 잘려나간 선체 구조물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세월호 침몰 또는 인양 과정에서 압력을 받아 협착돼버린 곳을 수색하려고 구조물 일부를 떼어낸 것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협착 부분은 멀리서 바라본 세월호의 모습과 달리 좌현이 얼마나 심하게 찌그러졌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최근 폐쇄회로(CC)TV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DVR이 있었던 3층 중앙홀의 안내데스크 자리는 바닥과 천장에 CCTV 연결 케이블이 가득 달려있었다.
정씨는 "의혹이 나오고 경악했다"며 '도대체 무엇을 숨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세월호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조타실은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아 출입이 금지되고 있었다.
조타 장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이곳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깨져버린 유리창 부분은 나무 합판으로 막아 뒀다.
인양 과정에서 유실물을 방지하기 위한 철재 유실방지망도 그대로 달려 있었다. 세월호가 직립할 당시 안전 문제로 공개되지 않았던 지하 기관실로 내려가자 수밀문이 활짝 열려있는 모습이 보였다.
배에 물이 차더라도 침몰을 방지하는 수밀문은 버튼 하나로 닫을 수 있었지만, 이 문은 끝내 닫히지 않았다.
기관실뿐만 아니라 보조기관실, 축계실, 타개실로 이어지는 각 격벽의 문 또는 통로도 열려있는 상태였다.
그날의 세월호는 순식간에 이 통로로 물이 들어차 짧은 시간 바다로 가라앉았을 터였다.
기관실을 나가는 길에 출입구 바로 위에 쓰인 '항해 중 개방금지'라는 문구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정씨는 "이제는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느냐"며 "누군가 양심선언을 통해 침몰 원인만이라도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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