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5주기] ① 빛바랜 팽목항의 노란 리본…그곳엔 큰 아픔이 있다

입력 2019-04-14 09:16
수정 2019-04-16 09:42
[세월호 5주기] ① 빛바랜 팽목항의 노란 리본…그곳엔 큰 아픔이 있다

기억관엔 쓸쓸한 적막감…"한이 풀렸으면.." 5년 지나도 추모객 이어져

처참한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세월호…"진실은 반드시 드러날 것"

[※ 편집자 주 =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년이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은 여전히 우리 속에서 현재진행형입니다. 바다가 삼켜버린 세월호는 목포신항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미수습자 5명은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완전한 진상규명도 아직 요원합니다. 우리의 시간은 5년 전 비극의 그 날에 멈춰있는 셈입니다. '잊지 않겠다'던 다짐, 안전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더할 수 없는 큰 무게로 다가옵니다. 연합뉴스는 세월호 참사와 그 후 5년을 되돌아보고 고인들을 기리는 기획물 6편을 마련했습니다]

(진도·목포·안산=연합뉴스) 이복한 천정인 기자 = 이름만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곳, 진도 팽목항.



세월호 참사 5주년을 엿새 앞둔 지난 10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방파제에는 유난히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방파제 난간에 매달려 힘차게 나부끼던 노란 리본은 오랜 시간 닳고 헤져 제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색이 바랜 방파제의 그림 타일도, 잔뜩 녹 슬어있는 리본에 달린 고리도 속절없이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추모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빨간 등대가 상징처럼 서 있는 팽목항 방파제를 찾은 추모객들은 물끄러미 먼 바다를 바라보거나 나부끼는 리본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기렸다.

아픈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5년 만에 겨우 팽목항을 찾아왔다는 박수범(55) 씨는 "현장에 와서 보니 더 울컥하다"며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얘기가 있겠느냐"고 했다.

방파제에서 바로 보이는 자갈밭은 참사 당시 수습의 거점이었던 곳이다.

자원봉사자와 추모객 등 수백만 명이 다녀간 흔적은 대부분 사라지고 컨테이너 가건물 몇 개만 남아 황량한 공터로 변했다.



그나마 지난해 9월 철수한 팽목 분향소 자리엔 '팽목 기억관'이 남아 당시의 기억을 품고 있었다. 사고 뒤 뒤늦게 차려져 3년 8개월간 희생자들의 영령을 품었던 곳이다.

낡은 컨테이너의 스산함이 더해진 기억관은 누구 하나 지키는 사람이 없어 쓸쓸한 적막감이 돌았다.

기억관 내부엔 어디서 왔는지 모를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종이배로 만든 세월호 위에 앉아 추모객을 맞고 있었다.

희생자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던 자리에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해맑게 웃고 있는 단체 사진이 대신 걸렸다.

최근에 다녀간 듯한 한 추모객의 방명록에는 "제발 한이 풀려 좋은 곳에 태어나 못다한 행복을 키울 수 있길 기원한다"는 마음을 담았다.

부산에서 혼자 찾아와 이곳을 둘러본 김점순(47) 씨는 눈시울부터 붉혔다.

김 씨는 "봄을 좋아하는 데 봄만 되면 세월호가 생각나 괴로웠다"며 "현재의 초라하고 열악한 모습이 아닌, 참사를 기억하고 경각심을 주는 '기억 공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방치된 듯한 기억관은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듯 깨끗하게 정돈된 상태였다.

참사 소식을 들은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안고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단원고 고우재 학생의 아버지 고영환 씨의 흔적이었다.

'세월호 가족식당'이라는 명패가 걸린 컨테이너에서 만난 고 씨는 "5년이 지났든 10년이 지났든 진상규명에서 뭐라도 나오는 게 있어야 집으로 돌아갈 것 아니냐"며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여객선 터미널이 들어설 계획이 세워진 이 자리에 세월호 '기억 공간'을 조성해 달라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사 직후부터 희생자 유족들은 마음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진상규명과 선체 인양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어렵게 구성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선체조사위원회는 기대한 만큼의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세월호 인양으로 명확한 사고 원인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선체조사위원회는 침몰 원인이 선체 내부에 있다는 '내인설'과 외부적 요인 가능성도 있다는 '열린 안' 등 두 가지 결론을 동시에 내리는 반쪽짜리 조사로 끝을 맺었다.

미수습자 5명도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바다가 삼켰던 세월호는 참사 1천91일만인 2017년 4월 목포신항에 인양돼 이듬해 똑바로 세워졌다.

팽목항에서 차로 40분 걸려 도착한 목포신항에서 마주한 세월호는 참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곳곳이 구겨지거나 뜯겨나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고, 1년 넘게 철제빔 받침대에 누워있었던 세월호의 좌현은 진갈색의 녹 덩어리로 변했다.

선체 내부를 수색하면서 나온 화물과 구조물, 내부에 쌓여있던 펄까지 하나도 빼지 않고 세월호 앞에 모아뒀다.

진상규명에 작은 단서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유가족들의 바람 때문이었다.

세월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신항 출입을 허용하는 주말이 되면 200~300명의 추모객이 찾아오고 있다.

철책 너머로 보이는 세월호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박상훈(39) 씨와 김지성(39) 씨는 "세월호의 실제 모습을 보며 사고가 났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며 "잊을 수도 없고, 결코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5년을 맞아 단원고가 있는 안산도 깊은 추모 분위기다.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한 교실을 재현해 놓은 '단원고 416 기억교실'엔 조문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학생들의 넋을 기렸다.

세월호 사고 후 2년 4개월 동안 학교에 보존돼 있던 기억교실은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이전돼 2016년 11월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희생된 학생들을 선배님이라고 부른 한 학생은 "리멤버(Remember) 20140416. 아직 안 잊었습니다"라며 "부디 그곳에선 행복한 일들만 있기를 바랍니다"고 추모했다.

세월호 진상조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활동을 시작한 2기 특조위(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최근 세월호 참사 폐쇄회로(CC)TV 증거자료가 조작·은폐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세월호의 진실'을 찾는 험난한 항해에 나섰다.

한 시민은 "유독 세월호 사건에만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심연의 끝에 있는 진실이라도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는 한 반드시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in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