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7년만에 '합헌→위헌'…"임신기간 따라 판단 달라야"

입력 2019-04-11 16:28
수정 2019-04-11 16:41
낙태죄 7년만에 '합헌→위헌'…"임신기간 따라 판단 달라야"

2012년엔 임신 단계와 무관하게 '태아 생명권 보호' 중시 판단

낙태허용 시기 '임신 22주' 내외로 정해질 듯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헌법재판소가 11일 7년 전 판단을 뒤집고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낙태를 둘러싼 사회 인식 변화가 자리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7년 전인 2012년 헌재는 현행 형법상 낙태 관련 처벌조항이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반대 의견도 4명이 나와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당시 헌재는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고, 임신 후 몇 주가 지났는지가 생명권 보호의 기준이 돼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또 낙태죄 처벌조항에도 불구하고 불법 낙태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데다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어서 처벌 규정을 경감하거나 없애면 낙태가 더욱 만연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자보건법에 임신 24주 이내의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점도 임부 자기결정권의 과도한 제한이 아니라는 근거로 삼았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도 쟁점은 2012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재판관들의 판단은 달랐다. 태아의 생명권이 무조건 임신부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선시돼야 하는 게 아니라, 임신 기간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날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처를 함에 있어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그 보호정도나 보호수단을 달리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임신 후 얼마가 지났는지에 따라 태아의 생명권 보호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로, 2012년 합헌 결정 당시 위헌을 주장한 소수의견에서도 비슷한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

헌재는 의학계 의견을 근거로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을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기산해 '임신 22주' 내외로 봤다.

그러면서 임신부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를 결정하고 실행하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신 여성이 사회·경제적 여건을 파악하고 주변의 상담과 조언을 얻어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시기를 '결정가능기간'이라고 칭했다. 다만, 헌재는 그 구체적 시기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결국 2012년 헌재 결정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모든 임신 단계에서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채택됐지만, 이번 헌재 결정에서는 임신 22주 내외를 넘기지 않는 동시에 결정가능기간을 충분히 보장하는 선에서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이 중시돼야 한다는 의견이 채택된 셈이다.

헌재는 ▲ 결정가능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언제까지로 할지 ▲ 결정가능기간에 사회·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할지 ▲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을 추가할지 등을 입법자가 판단할 몫으로 남겨뒀다.

현행 낙태죄 처벌 조항에서 낙태 수술과정 중 의료 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려우며, 비싼 수술비로 인해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쉽지 않은 점도 헌재가 낙태죄 조항의 위헌성을 지적한 요인이 됐다.

지금도 모자보건법에서 몇몇 예외 사유를 두고 낙태를 허용하지만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 갈등 상황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도 헌재가 낙태죄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본 근거다.

헌재가 이날 과거와 다른 판단을 내린 데에는 낙태를 둘러싼 사회 인식 변화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0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4명에게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58.3%였다.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30.4%, 모름·무응답은 11.3%로 집계됐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최근 낙태죄가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라는 의견을 처음으로 헌재에 제출하기도 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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