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더 강한 美 압박…물러서지 않는 이란

입력 2019-04-09 19:49
예상보다 더 강한 美 압박…물러서지 않는 이란

美, '이란 제재·압박 통한다' 판단한 듯

이란, 美 경제 고사 공세에 저항경제로 버텨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미국 정부가 이란에 대해 '사상 최대의 압박'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운동 때부터 노골적으로 이란을 향한 적대를 표출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이란 압박을 예상했긴 했지만 그 강도가 더 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압박은 '설마'라는 관측을 완전히 벗어난다.

그는 지난해 5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압박을 실행했다.

당시에도 핵합의가 양자 협상이 아니라 유럽 주요 3개국(영국, 프랑스, 독일)과 러시아, 중국이 모두 서명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행을 보증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설마 이를 실제로 탈퇴하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프로그램을 감축·동결한다는 핵합의 상 의무를 이란이 충실히 이행한다는 점을 사찰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한 터라 미국이 핵합의를 탈퇴할 명분도 부족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격적이고 일방적으로 이를 파기했다.

비밀 핵프로그램과 같은 이란의 핵합의 위반 사실도 제시하지 않은 채 "현행 핵합의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을 만하지 않다"며 탈퇴 이유를 밝혔다.

이란을 믿지 못하겠다는 뿌리 깊은 그의 불신이 탈퇴의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는 탈퇴 선언 뒤 지난해 8월과 11월 핵합의 이전으로 대이란 제재를 복원했다. 특히 이란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원유 등 에너지 수출을 봉쇄해 이란의 경제를 고사하는 데 제재의 초점이 맞춰졌다.



8일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IRGC)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결정도 예상을 넘는 수위의 강한 압박이다.

비록 이란이 적성국이지만 처음으로 다른 나라의 정규군 전체를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극단주의 테러조직과 같은 수준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이는 곧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이란 정권의 합법성과 정당성마저 부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미국의 대이란 압박의 최종 목표가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수립된 이란 신정일치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은 혁명수비대가 이란의 국방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시리아, 이라크, 예멘 반군 등 중동 국가에도 영향을 끼치는 조직인 만큼 이란의 역내 파급력을 제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란을 경제·정치적으로 고립하려는 미국은 지난해 제재 복원으로 이란 경제가 타격을 입고 이란 민심이 이반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 더 강한 압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1979년 이슬람혁명에 이어진 테헤란주재 미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비롯된 양국 간 갈등과 반목이 트럼프 정부에서 최고조로 치닫는 데엔 이스라엘을 빼놓을 수 없다.

역대 미국 정부가 정치·외교적 부담, 친미 아랍 이슬람권과 관계를 고려해 넘지 않은 선을 넘을 만큼 편파적인 친유대 정책을 펴는 트럼프 정부와 이란에 대한 적대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란과 패권을 다투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의 권력 지형이 새로운 세대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이 전례 없는 대이란 적대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는 배경으로 보인다.

최대 원유 수출국 사우디는 핵합의 성사와 버락 오바마 정부의 유화적인 대이란 외교로 이란에 기운 역내 주도권을 회복하려고 미국과 밀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적대 정책에 대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여러 차례 "(1979년부터) 지난 40년 간 가장 강력한 제재를 당하고 있다"며 이란 국민에 경각심을 일깨웠다.

그런데도 이란은 이에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란의 경제를 고사시키겠다는 미국에 맞서 이란은 지난해 '국산품 사용의 해'에 이어 올해를 '국내 생산 증대의 해'로 선포했다.

잔뜩 안으로 움츠려 최대한 자립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외국과 교류를 최소화해 미국의 경제 제재를 극복한다는 이란 경제 정책의 대원칙인 '저항 경제'를 방패로 들고 나왔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이란력으로 새해가 시작된 지난달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지난해는 미국과 유럽이 정치, 경제적으로 이른바 '전례 없는 제재'를 가했지만 우리는 이런 어려움에 강하고 굳건하게 대응했다"고 치하했다.

이어 "이란은 적들의 적의와 사악함에 맞서 우리의 가공할 힘과 장엄함을 과시했다"면서도 "우리가 당면한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새해에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지시했다.

민생고와 경제난이 정권을 가장 흔드는 불안요소라는 점을 이란 지도부도 인식하는 셈이다.

이란 리알화 가치 급락, 물가 급등, 실업률 상승과 같은 이상 신호가 서서히 감지되지만 이란은 '고난의 행군'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중동의 '시아파 벨트'를 중심축으로 중국, 러시아와 연대해 반미 전선을 구축하는 이란의 외교도 활발하다.

미국의 압박이 커질수록 이란은 핵합의 탈퇴와 핵프로그램 재개, 탄도미사일 개발, 역내 친이란 무장조직을 통한 이스라엘과 군사 충돌, 원유 수송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국제사회가 가장 꺼리는 '맞불' 카드도 하나씩 꺼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