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헌재, 사회적 인식변화에 맞게 낙태죄 판단하길

입력 2019-04-09 11:47
수정 2019-04-09 11:48
[연합시론] 헌재, 사회적 인식변화에 맞게 낙태죄 판단하길



(서울=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낙태 처벌이 헌법에 부합하는지를 11일 판단한다. 2012년 재판관 의견 4대 4로 위헌 정족수 6명에 미치지 못해 낙태죄가 합헌으로 결정된 지 7년 만이다. 그동안 낙태죄에 대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고 여성에게만 죄를 묻는 것은 문제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한 6기 헌법재판관들은 2019년 현재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를 직시하고, 전향적으로 반영하는 결정을 내놓기를 바란다.

위헌심판 대상은 1953년 제정된 후 66년간 유지된 형법 269조 1항의 '자기 낙태죄'와 형법 270조 1항의 '동의 낙태죄'다. 낙태한 여성을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조항과 여성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2년 이하 징역에 처하게 한 조항이다. 헌재가 내려야 할 판단의 핵심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것이다. 2017년 기준 연간 약 5만건의 낙태가 이뤄지지만, 낙태죄로 실제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가 극소수인 데다 처벌수위도 낮아 낙태죄 조항이 사문화하고 있는 상황도 정리해야 한다.

헌재는 사회·경제적 이유로 임신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원하지 않는 여성의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행복 추구권을 위협한다는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2010년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53.1%였지만, 2017년 조사에선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51.9%였던 것은 달라진 세태를 보여준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달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건강권·생명권·재생산권 등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다. 유럽에서 가장 엄격하게 낙태를 금지해온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도 임신 12주 내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법을 올해부터 시행하는 등 낙태의 비범죄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헌재가 위헌을 결정해 낙태죄의 효력을 즉시 상실시키거나, 헌법불합치를 결정해 현행 낙태죄를 잠정 유지한 채 시한을 주고 입법을 촉구할 경우 국회가 신속하게 나서야 한다. 생명경시 풍조 확산은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물론 시민사회와 의료계·종교계가 합심해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고 무분별한 낙태를 방지할 수 있는 보완책을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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