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임대료 2배 베를린, '임대업체 주택 공영화' 갑론을박

입력 2019-04-09 05:49
10년간 임대료 2배 베를린, '임대업체 주택 공영화' 갑론을박

지난 주말 베를린서 수만명 '미친 임대료' 거리 시위

녹색당, 공영화 지지…메르켈 측 부정적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지난 5일 독일 수도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서 어느 상점 외벽에 'Google'(구글)이라는 글자에 빨간색으로 엑스자가 그려진 작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구글은 크로이츠베르크에 스타트업을 위한 '구글캠퍼스'를 3천㎡ 부지에 설치하려 했지만,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대 속에서 지난해 10월 추진 2년 만에 포기했다.

반대 이유는 임대료 및 집값 급등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고소득의 IT 인력이 구글캠퍼스 인근에 거처를 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임대료가 뛸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구글의 철회 발표 후 5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걸려있는 구글 반대 현수막 근처엔 '미친 임대료'를 비판하는 집회의 홍보 팸플릿이 붙어있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던 크로이츠베르크와 인근의 노이쾰른에서는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상당히 진행 중이다. 상당수의 기존 거주자들은 베를린 북부의 베딩 등 다른 외곽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베를린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2000년대 중반 임대료와 집값이 급등하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베를린 임대료와 집값은 지난 10년간 2배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하반기에만 임대료가 10% 가까이 상승하며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영국 부동산 컨설팅 업체 나이트 프랭크의 지난해 4월 '글로벌 주요 도시 지수' 보고서에서 베를린은 2017년 주택 가격이 20.5% 상승해 조사 대상 150개 도시 가운데 1위에 올랐다.

이에 베를린 시민들은 지난해 말부터 거대 부동산 임대업체가 보유한 주택들을 유상 몰수해 공영화하자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토지, 천연자원, 생산수단을 법률에 따른 보상을 통해 공유재산이나 공동관리경제의 형태로 전환할 수 있다는 독일 기본법 15조를 근거로 내세웠다.



베를린에 11만2천 채의 주택을 보유한 '도이체 보넨' 등 주택 3천 채 이상을 보유한 임대업체를 공영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글로벌 투자·임대업체들은 베를린 임대료 상승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적자에 시달리던 베를린시가 2004년부터 사회주택을 매각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임대업체들은 베를린의 임대시장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임대업체들은 베를린의 주택을 사들여 개량한 뒤 임대료를 올려 받았다.

옛 사회주택에 살던 이들은 베를린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개량된 주택에는 베를린에서 급속히 커지고 있는 IT 분야 등의 고임금 종사자들이 들어왔다.

베를린시는 뒤늦게 2015년 임대료 상한제도를 실시했지만, 임대료 폭등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 6일 베를린 도심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임대료 상승 비판 및 임대 공영화를 주장하며 참여한 시위는 악화한 시민 정서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민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인 미테와 크로이츠베르크 등에서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시장이 가난을 만든다, 주택은 인권이다', '미친 임대료'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할머니들을 위한 베를린'이라는 구호도 나왔다. 임대료 폭등의 주요 피해자들이 연금 생활자인 고령층인 탓이다.

남편은 80세, 부인은 77세인 호프만 부부는 시위 현장에 나와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에 "엄격한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민들은 부동산 박람회장을 지나치기도 했다.



이번 운동의 목적은 주민투표를 통해 주택 공영화를 이루는 것이다. 주최 측은 25만 채 정도를 공영주택화 할 수 있다는 셈을 하고 있다.

시위 과정에서 7시간 만에 1만5천 명이 주택 공영화에 찬성하는 서명을 했다.

베를린에서는 지난해 5월에도 활동가들이 임대료 폭등에 항의하기 위해 크로이츠베르크와 노이쾰른 등에서 리모델링 대기 중인 40여 채의 빈 건물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가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당했다.

시민들의 의견은 갈린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포르자가 지난 2월 베를린 시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4%가 공영화를 지지했다. 반대는 39%였다.

8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에 따르면 도이체 보넨의 최고경영자인 미카엘 찬은 이번 운동에 대해 "매우 포퓰리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며 더 많은 정부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찬반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진보성향인 녹색당의 로베르트 하벡 대표는 7일 일요지 벨트 암 존탁과의 인터뷰에서 "토지 소유자가 건축법에 따라 땅을 팔거나 집을 집지 않으면 토지 수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수성향의 기독사회당 소속인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 총리는 주택 공영화에 대해 "사회주의 사상"이라고 비판했다고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이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총리실 대변인은 8일 기자회견에서 "저렴한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열쇠는 (임대업체로부터)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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