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 집과 말 지켜낸 '건축왕' 정세권 기념전(종합)
한옥 대량 공급·조선어학회 지원…서울시, 오늘부터 5월 10일까지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일제에 맞서 한옥과 한글을 지켜낸 '조선의 건축왕' 기농(基農) 정세권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전시회가 열린다.
서울시는 9일부터 5월 10일까지 북촌 한옥청에서 정세권 선생을 기리는 전시회 '북촌, 민족문화 방파제-정세권과 조선집'을 개최한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회는 정세권 선생의 삶을 연대기별로 보여준다.
총 4개 섹션 중 첫번째 섹션에서는 정세권 선생이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부동산개발회사 건양사를 설립해 한옥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정세권 선생은 "사람 수가 힘이다. 일본인들이 종로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건양사를 설립, 북촌을 비롯한 서대문과 왕십리 일대에 '조선집'이라 불린 근대 한옥을 대량 공급했다. 특히 왕실과 양반층의 대규모 주택을 매입한 후 토지를 쪼개 10∼40평형대 소규모 한옥을 서민층에게 분양했다.
정 선생은 또한 실용성을 높이기 위해 전통 한옥 방식에서 벗어나 가운데 건물이 있는 '중당식(中堂式) 한옥'을 설계하고, 처마에 내구성이 뛰어난 함석을 사용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디벨로퍼(developer·부동산 개발업자)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조선의 상공업 부흥을 위해 애쓴 민족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조망한다. 정 선생은 1931년 조선물산장려회관의 부지와 건축비를 제공했고, '장산사'를 설립해 조선물산장려운동을 펼쳤다. 정세권이 기증한 조선물산장려회 건물터는 최근 발견됐는데 서울시는 이곳에 표석을 설치할 계획이다. 아울러 북촌한옥마을 버스 정류장에는 '정세권활동터'를 병기했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조선어학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다 고초를 겪은 정세권의 행적을 되짚는다.
정세권 선생은 1935년 조선어학회 회관을 지어 기증하는 등 조선어학회 운영자금을 지원하다 1942년 체포돼 고문을 당하고 이후 토지를 몰수당했다. 1950년대 말에는 고향인 경남 고성으로 돌아가 말년을 보냈다.
네 번째 섹션은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제작된 흑백영화 중 전통한옥과 조선집을 생생하게 담은 '미몽'(1936),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 10편을 편집해 보여준다.
전시 기간 한옥청 인근 가회전망대에서는 정세권의 삶을 소개하는 시민 아카데미가 9일, 20일, 27일 세 차례 열린다.
이날 한옥청에서 열린 전시 개막식에서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총감독은 "정세권이 만든 북촌 한옥단지는 식민지 시기 저항문화의 유산"이라며 "정 선생은 가장 민족적인 사업으로 번 돈을 가장 민족적인 사업에 쓴 민족 자본가"라고 평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도시의 형태에 맞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 수 있는 도시형 한옥을 만드신 분"이라며 "선생의 업적 덕분에 종로가 전통의 마을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권 선생의 손자 정희영 씨는 "할아버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일생을 보내신 분"이라며 "현대를 사는 우리가 그런 정신을 물려받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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