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패션의 얼굴' 폴 스미스 "젊은 디자이너, 수평적 사고를"

입력 2019-04-08 16:13
'영국 패션의 얼굴' 폴 스미스 "젊은 디자이너, 수평적 사고를"

색줄 디자인으로 유명한 패션디자이너, 6월 DDP 대규모 회고전

"영감은 모든 것에서 온다…요즘 패션, 트렌드 따라하기에 급급"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월요일이 됐는데 호텔 방으로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화요일과 수요일에도요. 목요일이 되자 오후 4시에 처음 한 사람이 찾아왔어요."

색색 줄무늬 디자인으로 유명한 영국 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73)가 전한 '폴 스미스' 출발이다.

1976년 30살 영국인 디자이너는 '파리 패션 위크'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로 무작정 향했다. 패션쇼를 열 만한 이력도, 자금도 없었던 디자이너는 고민 끝에 숙소를 패션쇼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매일 아침 침대에 검은 천을 덧씌워 옷을 진열하고, 옷장에도 일부를 걸고서는 손님을 기다렸다. 영국 패션의 얼굴로 자리매김한 디자이너의 첫 쇼였던 셈이다.

6월 6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하는 폴 스미스 회고전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에는 이 호텔 방을 재현한 공간이 마련된다.

8일 미리 방한해 기자들과 만난 스미스는 "시작은 미미하더라도 디자이너로 어떻게 크게 발돋움할 수 있는지, 젊은이들이 이 공간에서 영감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스미스는 원래 사이클 선수가 될 꿈에 부풀었던 젊은이였다.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교통사고로 꿈을 접은 스미스 앞에 왕립예술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한 폴린 데니어가 나타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1970년 노팅엄 뒷골목에 1평 규모의 남성 정장 부티크를 열었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고전적인 의상에 의외의 소재와 디자인을 조합한 스미스 디자인은 '위트있는 클래식'(classic with twist)으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스미스는 "'영감은 모든 것에서 온다'는 말을 좋아한다"라면서 "요즘 패션은 디자인을 베끼거나 트렌드를 많이 따르는데 저는 머릿속 아이디어에 집중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폴 스미스' 브랜드가 다른 디자이너 레이블과는 달리 대기업에 합병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럴 경우 창의력이 통제받기 쉬운데, 폴 스미스의 보스는 폴 스미스죠. 업계에서는 매우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DDP 전시는 2013∼2014년 런던 디자인뮤지엄에서 처음 열린 뒤 총 11개 도시를 순회한 스미스 회고전을 가져온 것이다. 그가 디자인한 의상·사진·페인팅부터 수집품에 이르기까지 1천500여점을 전시해 스미스의 인생과 작업을 소개한다.

디자이너는 "대부분 디자이너가 자신이 작업하고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를 밝히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 회고전은 정말 솔직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색색 줄무늬 디자인이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귀띔했다.

원로가 된 스미스는 후배를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갈수록 패션과 관련 제품은 비슷해지고 있어요. 비슷하게 생각하고 따라하기에 급급한 탓이죠. 젊은 디자이너가 제 전시를 보며 다르게 생각하는 법, 수평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키운다면 패션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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