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산불] 봄에는 산불 여름은 수해…강릉 옥계 주민들 '트라우마'

입력 2019-04-07 12:23
[강원산불] 봄에는 산불 여름은 수해…강릉 옥계 주민들 '트라우마'

15년 동안 대형산불만 3번…2002년 태풍 루사 땐 마을 전체 물 잠겨



(강릉=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겁이 납니다."

7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사무소 앞에서 한 주민은 지나가는 소방차만 보고도 치를 떨었다.

옥계면 일대는 지난 4일부터 시작된 산불로 250㏊ 산림이 훼손되고 주택 100여채가 파손되는 등 잿더미로 변했다.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주말을 맞아 달려온 가족들 때문에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지난 4일 밤늦은 시간 뒷산 불길이 순식간에 민가로 번진 순간을 잊을 수 없어 아직도 가슴이 뛴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천남리 주민 유여선(87) 씨는 "잠을 자다가 전화를 받고 뛰쳐나왔는데 이미 뒷산에 불이 번져 있었다"며 "택시 한 대가 마을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을 태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민 3천700여명이 살고 강릉시 전체면적 15%가량을 차지하는 옥계면은 과거 수차례 대형산불과 물난리를 겪은 터라 주민들이 받는 정신적인 고통과 불안감은 더 크다.

이번 산불피해가 집중된 천남리, 남양리와 10㎞가량 떨어져 있는 산계리에서는 2017년 3월 대형산불이 발생, 산림 160㏊가 소실됐다.

이 지역은 2004년 3월에도 대형산불이 발생해 임야 430㏊와 가옥 등 건물을 태웠다.

2002년에는 태풍 루사로 옥계면 전체가 물난리를 겪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당시 주수천이 범람하면서 유리온실이 물에 잠기고 수해 피해를 보지 않은 가구가 없었다.

마을 주민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대형산불 외에도 연례행사처럼 봄이 오면 산에 불이 난다고 말했다.



천남리 주민 정진국(51)씨는 "이제는 더는 불이 안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며 "잊을만하면 재해 소식에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산불을 막을 수 없다면 불을 빨리 끌 수 있는 헬기를 추가 도입하고 마을마다 소화전을 확충하는 등 대책이라도 마련돼 주민들이 좀 더 안심하고 터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산불은 민가로 불이 순식간에 번져 역대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 중 피해가 가장 크다.

더군다나 옥계면 경관림 역할을 하는 천남리 일원이 불에 타면서 마을 주민들 충격은 더 크다.

한 주민은 "봄이 되면 꽃이 아름답기보다 산불 걱정이 우선이다"며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대책이 어서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handbroth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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