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 25주년 앞둔 르완다…트라우마의 그림자 여전히 드리워져
'경제회복 성과' 카가메 대통령, 독재자로서의 이미지 탈피 시도
(나이로비=연합뉴스) 우만권 통신원 = 동아프리카 르완다에서는 오는 7일(현지시간) '1994년 르완다 대학살' 25주년 기념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주로 소수 투치족과 다수 후투족 중 일부 온건파 등 80만명이 사망한 대학살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르완다는 경제적으로는 복구됐지만,
당시 100일 동안 진행된 공포의 트라우마는 아직도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나라 전체에 드리우고 있다고 AFP 통신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해마다 대학살이 시작된 4월 7일이면 폴 카가메 대통령은 25만명 이상의 희생자가 잠든 것으로 알려진 수도 키갈리의 대학살 기념관에 놓인 추모 등에 불을 밝힘으로써 100일간 이어지는 국가 애도의 날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반군 지도자로 학살 주범들을 몰아내고 권좌에 오른 카가메 대통령은 오는 7일 오후 키갈리 축구경기장에서 희생자 추도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르완다 현지어로 평화를 뜻하는 '아마호로' 국립 스타디움은 사건 당시 유엔이 수천 명의 투치족을 거리의 학살자들로부터 지켜낸 장소이다.
1994년 4월 7일, 전직 군인과 민병대원으로 구성된 후투 세력은 당시 후투족 출신의 쥐베날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이 암살되고서 투치족 타도를 외치며 피의 대학살을 시작했다.
카가메는 당시 36세의 나이로 투치족 반군 르완다애국전선(RPF)을 이끌고 키갈리에 입성해 후투족 극단주의자들을 몰아내고 권좌에 올라 나라를 몰라보게 변모시켰다.
카가메는 철권에 의한 독재정치를 이어가며 내륙국인 소국 르완다를 경제회복의 길로 이끌어 지난해 성장률 7.2%를 이룩했다.
이러한 경제발전은 대학살을 막아내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국제사회의 도움에 기인한 바가 적지 않다.
현지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브루스 무링기라(24)는 "지난 25년간 우리가 이룩한 성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라고 말했다.
무링기라는 1천200만 르완다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젊은 층으로 대학살 사건 이후 출생한 세대이다.
그는 희망에 찬 표정으로 "짧은 기간에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한다"며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피로 얼룩진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로서는 화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르완다는 공공장소에서 '종족'에 대한 언급을 금지하고 있으며, 학살의 가해자들에 대한 사법처리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커뮤니티에 '가카카'로 불리는 지역 단위의 자율 재판소를 운영하면서 공동체 간 관계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화해는 아직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비극의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들의 시신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많은 가해자가 법망을 피해 가는 마당에 희생자 가족들에게 용서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카가메는 대학살 이후 괄목할만한 경제성과를 이루어 내 모범적인 지도자로 불리지만 혼란을 잠재우고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구사한 그의 철권통치는 많은 비판도 받는다.
서방 국가들은 그가 독재정치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야권을 탄압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는 지난 2017년 8월 99%의 지지율로 임기 7년의 대통령직 연임에 성공했다. 앞서 2015년 국민투표로 통과된 개정 헌법에 의해 그는 2034년까지 권좌에 머물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61세의 카가메는 그러나 구속된 야당 지도자들을 최근 석방하는 등 억압적인 통치방식을 조금씩 풀면서 언젠가는 권좌에서 내려올 때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한 정치평론가는 "카가메는 야권에 인내하지 못한 독재자로서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털어내는 일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론가는 그러면서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정치적 유산을 남겨야 하는지 점점 더 인식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해 프랑크 하비네자가 이끄는 녹색민주당(GDP)이 의회 내 2석을 확보하며 의회에 입성한 르완다 최초의 야당이 된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 평론가는 또 "집권당이 더는 반대의견에 지나치게 민감하지 않다. 여당은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의견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우리의 성명서가 정부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한편 일부 아프리카 지도자가 이번 대학살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인 가운데 과거 식민 통치국 벨기에는 샤를 미셸 총리가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프랑스는 바쁜 일정을 이유로 참석 불가 의사를 밝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대신해 르완다 출신 파리 의회의 29세 의원 에르베 베르빌을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르완다는 프랑스가 대학살에 관여했다며 비난하고 있다.
이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큰 주목을 받을 인물로는 르완다의 과거 우방국인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꼽힌다.
르완다는 우간다가 르완다 출신 반군들을 우간다 영토에 숨겨주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airtech-ken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